“고운 최치원 선생 유적지,
발길 닿는 곳에 보령화력 임직원 손길 묻어 있어”
“고운 최치원 선생 유적지,
발길 닿는 곳에 보령화력 임직원 손길 묻어 있어”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08.08.0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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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화력, 문학정신 승화사업으로 후대 문화자산 만들어 내
추모 서예대전 시상식 가져…심재숙 씨 ‘학무’로 대상 수상
서해안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인 대천해수욕장을 가다보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적지가 있다.

거창하게 꾸며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잘 갖춰진 주차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널따란 논 중간에 무덤처럼 오목하게 올라와 있는 곳. 그리고 연륜이 묻어있는 듯한 소나무들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그곳에는 보령화력 임직원들의 따뜻한 손길이 묻어 있다.


그곳은 바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업적인 담긴 유적지. 시작은 정장섭 사장이 이곳을 지나다 지역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프로젝트지만 마지막은 중부발전 보령화력 임직원들의 손으로 완성됐다.

이 유적지는 우리나라 최고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 선생의 유적지 보존과 문학정신 승화사업의 일환으로 후대에 길이 남길 문화자산을 만들기 위해 중부발전 보령화력 임직원이 보존사업에 뛰어든 것.

보령화력 임직원은 ‘고운 최치원 선생 유적지 보존위원회’를 구성해 충남 보령시의 명품문화재로 재건하고자 순수한 성금 3000만원의 나눔 기금을 들여 유적지 보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은 통일신라 말기 뛰어난 학자로 신라 6두품 출신의 유학자로 당에 유학한 후 돌아왔다. 그러나 신분제약으로 자신의 뜻을 실현하기 어려워지자 관직에 미련을 버리고 전국을 유람하던 중 이곳에 머물면서 병풍처럼 둘러진 암벽에 한시(漢詩)를 새겼다고 전해져 온다. 그러나 이 한시는 알아볼 수 없다. 세월이 많이 흘렀기 때문이다.

이 곳은 1995년 남포방조제 건설 전 맥도(麥島)로 불린 섬이었다고 한다.



지난달 31일 조용하던 이곳에 많은 발길이 찾았다. 보령화력은 고운 최치원 선생의 추모 전국 서예대전 시상식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는 유적지의 보존과 문학정신 승화사업의 일환으로 열렸다.

이날 나이 지긋한 어르신부터 꼬마아이들까지 시상식보다는 동네 잔치 분위기였다. 날씨는 30℃를 훌쩍 넘는 듯 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기 때문이다.

고운 최치원 선생의 후손인 듯한 최일환 할아버지(82세·가명)는 “오래 살고 볼 일이여”라고 연신 말하며,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러고 보면 이날 시상식은 뒷전이고 마을 잔치로 막을 내린 것 같다.

이날 점심은 갈비탕. 더운 날씨지만 기자도 한자리 끼어 공기밥 두 그릇을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아무리 봐도 한우 인 듯. 서울에서는 좀처럼 먹어 본적 없는 맛이었다. 최근에 미국산 소고기 수입으로 시끌시끌한 가운데 한 정치인은 한우보다 미국산 소고기가 더 맛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한우가 더 맛있는 것 같다.

서빙은 보령화력 직원들의 몫. 이 동네 유지인 듯한 할아버지는 보령화력 직원을 손자처럼 부르기도 했다. 정다운 모습으로 기억됐다. 업무시간이지만 상사 몰래 동네 어르신들과 한 잔의 술도 건네 받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보이지 않는 정, 이 모습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이번 서예대전에 총 304명이 496편의 작품을 출품해 자웅을 겨뤘다. 이날 대상은 심재숙 씨의 ‘학무(鶴舞)’로 선정됐다. 이 작품은 ‘학이 춤추는 봄의 연못에 달이 비추고 꾀꼬리 우는 벽수에는 바람이 분다’의 뜻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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