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전기요금, 왜곡된 에너지소비구조
값싼 전기요금, 왜곡된 에너지소비구조
  • 황보준 기자
  • times@energytimes.kr
  • 승인 2011.07.07 18: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OECD 국가 중 전기요금은 최하, 소비량은 최고
잘못된 에너지가격이 소비자를 전력으로 집중하게 해

#1.“더운데 뭐 땀 흘리지 않게 아무거나 시원하게 틀어 놓으면 그만이지.”
장마와 태풍으로 연일 계속된 비로 습기가 많아 더 덥게 느껴지던 지난달 28일 영등포 시장. 과일과 야채를 주로 파는 이 곳 상인들도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선풍기나 에어컨에 효율이 높은 제품이 있는데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상인에게서 돌아온 답이다. 같은 에어컨과 선풍기 제품이라도 효율이 높은 고효율제품이 있다는 말에 그 상인은 “그래봐야 전기요금 몇 푼이나 차이가 나겠어”라고 오히려 타박이다. 효율성을 따져 제품을 구매할 만큼 전기요금의 차이가 주는 이점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등유난로를 사용하다가 벌써 몇 해 전부터 겨울철 난방은 전기난방 제품으로 바꿨어요. 새벽에 시장이 주로 열리기 때문에 추워서 꼭 필요합니다. 이 곳 상가에 전기담요 한,두개 없는 곳은 없을 걸요.”

우리나라 에너지가격에 대한 왜곡이 또 다른 왜곡을 낳고 있다. 특히 전기에너지 가격에 대한 왜곡이 소비자들의 패턴을 왜곡시키고 있다. 소비자들이 등유나 가스 등 다른 에너지원을 사용하다가도 전기로 돌아서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기에너지는 2차 에너지로 편리함과 안전성에 비해 생산 효율성이 떨어져 소비량이 증가할수록 국가 전체 에너지 효율성은 떨어질 수 있다. 또 단순 계산으로 따지면 전기는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1차에너지에 비해 가격이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전기에너지 가격은 원자력발전과 정책적 고려로 오히려 1차에너지보다 싸게 팔리고 있다. 국책연구원 한 전문가는 “현재와 같은 가격시스템에서는 국가 전체 에너지효율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향후 비효율적인 소비구조 행태를 고착화 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주거·산업부문 전기요금 OECD국가 중 최하

우리나라의 에너지원간 가격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은 그동안 꾸준히 계속 제기돼 왔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생활과 국가산업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손대기를 주저하고 있다. 에너지원간 가격구조 중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역시 전기요금이다.
지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대비 절반 수준(주택용 47.8%,산업용 54.6% )이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는 주거 부문과 산업 부문 모두 OECD 국가 중 전기요금이 가장 낮은 0.058달러/kWh와 0.077kWh를 기록했다. 국내 전기요금은 원가회수율이 86.1%로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기가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값싼 전기’는 여러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전기에너지 소비로의 집중은 바로 요금에서 비롯됐다. 국내 제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력소비량은 지난 2008년 기준으로 OECD 주요국의 1.7배~2.9배를 기록했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전력소비량은 0.5614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한국을 100으로 봤을 때 OECD 평균은 58이고 일본(36), 독일(49), 영국(36) 등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1인당 전력소비량도 우리나라는 8833kWh로 OECD 평균인 8068kWh를 상회한다. 주요 선진국 중 OECD 평균을 넘는 국가는 미국(1만2917kWh)밖에 없다.

값싼 요금, 에너지다소비산업 경쟁력 취약하게 해

낮은 전기요금은 국내 산업에도 영향을 미쳐 에너지다소비형 산업구조를 이루도록 했다.
에너지 분야 전문가인 A교수는 “낮은 요금은 에너지다소비기업의 입장에서 많이 쓸수록 원가 이하 요금의 혜택을 더 크게 받는 왜곡을 발생하게 한다”며 “이런 시스템에 익숙한 에너지다소비사업장들은 에너지 위기에 봉착했을 때 대처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와 같이 국가 간 개방경제 상황 아래에서 다른 나라보다 싼 전기요금으로 이뤄진 에너지다소비산업은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또 낮은 전기요금을 충당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일반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에너지다소비산업은 혜택을 받는 꼴로 소비자 간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전기요금 저가정책은 한국전력을 부실로도 내몰고 있다. 2008년도 이후 전력생산의 원료가 되는 유연탄ㆍLNGㆍ석유가격이 폭등했으나 물가관리 정책 등의 사유로 전기요금은 거의 동결하다시피 인상을 최대한 억제했다. 그 결과 2008년도에 한전은 3조원에 가까운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이후 2010년까지 연속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현재 국내 전력생산의 60%를 담당하는 화석발전의 경우 연료비가 2003년 5조5000억원에서 지난해 19조3000억원까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올 들어 국제유가가 중동 정세불안과 함께 일본 대지진에 따른 원전의 불안감 등으로 배럴당 110달러마저 돌파하는 등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20조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료비가 원가 변동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력산업의 특성상 이 같은 연료비 급상승은 한전과 발전자회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크게 벗어났다.

한전 눈덩이 적자, 고효율제품보급 걸림돌 등 부작용 

한전의 계속된 적자는 재무구조 악화에 따른 신인도 하락을 불러오고 연쇄반응으로 자금조달비용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또 연관 산업의 투자위축은 중장기적으로 에너지산업의 성장을 떨어뜨려 동반부실의 위험까지 불러오고 있다.
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전력은 전력산업발전을 위해서 중장기적으로 볼 때 해외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범위를 넓힐 수 있도록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오히려 역행하는 듯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전은 올초 재무악화로 해외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제한을 받아 입찰에서 서류심사도 통과하지 못하고 탈락하기도 했다.
전기요금의 저평가는 고효율제품의 보급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효율이 높은 제품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도시근로자 가구당 소비지출을 보면 통신비가 13만원, 대중교통비와 연료비도 각각 6만1000원, 5만4000원에 이른다. 그러나 전기요금은 4만3000원으로 주요 지출비 가운데 가장 낮다. 소비자들은 교통비보다 낮은 지출에 ‘고효율제품이냐’를 선택할 정도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정책적으로 보조금을 지불해 가면서 고효율제품의 보급에 나서고 있으나 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은 고효율제품 생산 기업의 성장과 연관 기술개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효율업계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A라는 전기제품은 효율이 높지만 가격이 조금 비싸다. 그러나 만약 비싼 가격을 상쇄할 수 있을 정도로 전기요금이 절약된다면 소비자의 선택은 뻔한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값싼 전기요금은 고효율제품의 보급 뿐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등 전반적인 에너지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에너지 업계 한 관계자는 “비현실적인 전기요금이 가져 오는 피해는 이제 한계에 온 것으로 보인다”며 “이제 더 이상 전기요금 현실화를 미룰 수 없다”고 경고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