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뭘해도 되는 '팔색조'
하정우, 뭘해도 되는 '팔색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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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1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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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머리가 시원하다. 도적 무리 속 우두머리로 말을 타고 질주할 때도 속이 뻥 뚫린다. 누덕누덕 기운 헌 옷 사이로 비치는 몰골이 썩 아름답지는 않지만, 하정우(36)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감에에 몸이 스크린 쪽으로 기운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감독 윤종빈)에 하정우는 다소 모자라 보이는 백정 '돌무치'로 등장한다. 바늘로 오른쪽 볼을 찔러도, 돌로 머리를 내리쳐도 무덤덤하다. 덥수룩한 머리와 어리바리한 표정만 봐도 웃음이 나온다. 게다가 영화 속 하정우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다. 무모한 설정이지만, 하정우의 연기가 그럴싸하다.

하정우는 "윤종빈 감독과 20대 중반부터 세 작품을 함께 해 오면서 신뢰가 쌓였다. 특히 캐릭터가 입체감이 있다. 배우의 입장에서도 연기하기에 재미있는 부분이다. 영화만 보이고 끝나는 작품이 종종 있는데, 윤 감독의 영화는 인물들이 보인다. 강점이다"며 믿었다.

이 영화에서 하정우는 '귀여움'을 담당했다. 스무 편이 넘는 영화에서 봐 온 얼굴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새롭다. "영화 속 현실은 무겁기 때문에 '돌무치' 캐릭터마저 무겁게 표현한다면 캐릭터가 단면적이고 빤할 것 같았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조니 뎁) 같이 귀여우면서도 어리바리한 느낌을 가져갔다. 귀여움과 유연함이 유지돼야 관객이 쉽게 이입할 것 같았다."

"관객이 봤을 때 '부족한가?'하는 의문점이 있었으면 했다. 거친 외모지만 아이같은 귀여움이 나와야 도적 '도치'가 됐을 때 쾌감이 클 것 같았다. 사람이 아닌 동물, 그중 귀여운 바다표범이나 물개처럼 보이고 싶었다. 도치에게서 충분히 거친 행보가 보이기 때문"이라는 계산이었다.

영화 속 하정우는 한 인물이지만, 마치 1인2역을 연기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최하층 천민인 백정 '돌무치'와 도적의 에이스 '도치'가 됐을 때 표정과 행동은 다르다. 얼굴에 수염을 붙이고 아이라인을 그렸다. 양손에 도끼를 들고 능수능란하게 휘두르기도 한다. 머리까지 깨끗하게 밀었다.

하정우는 "머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며 몸서리쳤다. 특히, 화재 장면 촬영을 위해 반삭했을 때는 끔찍했다. "현장에서는 산다라 박이라고 불렸다. 한쪽은 가발을 쓰고 한쪽은 패치를 붙였다. 여름이라 폭포처럼 땀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완전 삭발도 편하지는 않았다. "현장에 가면 정신없는 상태에서 면도부터 한다. 평소 메이크업과 헤어하는 게 30분이 걸리는데 나는 3시간씩 분장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내 머리 위로 칼질이 이뤄진다. 애프터셰이브를 바르고 본드 칠을 하고 파운데이션으로 메운다. 본드로 수염을 붙인다. 그러고 촬영에 들어가면 10년 전 화가 났던 일까지 생각난다. 그 정도로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또 "잠깐 촬영이 걸리는 신, 20분 동안 대사 한 마디 없이 옆에 서 있는 신이라도 3시간 분장을 해야 했다. 게다가 촬영장까지도 거리가 멀고 화장실도 불편하다. 여름이라 이동식 화장실은 정말…. 다들 버선을 신었는데 나만 맨발에 짚신을 신었다. 자갈밭을 뛰어다니며 액션을 했다. 잘하려고 해도 미끄러워서 힘들었다. 온몸에 얼룩 분장은 했지, 날씨는 덥지, 촬영하다가 난 어루러기를 고치는 데만 4개월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캐릭터 고민은 늘 익숙한 작업이지만, 분장과 더위가 이렇게 나를 방해할 줄은 몰랐다. 매일 싸웠다. 본드가 떨어져 나가 다시 붙이고, 또 밥 먹을 때 입안으로 털이 들어왔다. 촬영장 가는 차에서 '제발 오늘도 이 분장을 감당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밤 촬영이라고 사정이 나은 건 아니다. "도시는 빛이 밝기도 하고 밤 촬영을 위해 세팅도 많이 한다. 하지만 '군도' 촬영장은 빛 대신 횃불을 갖다가 댔다. 내가 뜨거울수록 모기들은 파이팅을 외쳤다. 이번 촬영은 거저 먹는 장면이 한 개도 없다. 집에 와서 분장을 해체하는 작업에만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촬영이 끝난 후 "'나 정말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망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단지 캐릭터에 맞는 옷을 입은 것뿐"이라고 이해했다. "지금 와서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다."

또 "윤 감독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정우는 지난해 첫 장편영화 '롤러코스터'를 연출해 감독으로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지금은 전남 순천에서 영화배우 하지원과 함께 영화 '허삼관 매혈기'를 촬영 중이다. 하정우는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과 연출을 동시에 소화한다.

"연출을 해보니 배우와 감독의 입장이 이해가 간다. 내가 선택한 부분이기 때문에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처음 연출을 끝내고 내가 이전에 출연했던 감독님들에게 다 사과했다. 내가 모니터 앞에 앉아보니 사람들이 모자란 부분이 보인다. 그래서 영화 '더 테러 라이브'나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는 더 협조를 많이 하고자 했다. '허삼관 매혈기'가 70억원 대작이다. 배우일 때는 몰랐을 부분들을 촬영 준비를 하면서 많이 느끼고 감사하게 된다. 이렇게 감독을 하면서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됐다."

하정우는 '허삼관 매혈기'의 60차 중 19차 촬영을 마쳤다. 합천, 순천, 양수리 세트, 순천 일대를 돌고 있다. '짝패'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해낸 류승완 감독을 찾아가 모니터를 부탁했다. 윤종빈 감독과도 2박3일 동안 함께 머물며 조언을 구했다.

"우디 앨런이 '알 것도 같고 될 것도 같은데 꼭 뒤통수를 친다. 그걸 찾기 위해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말씀했다. 그 말을 알 것 같다. 이 말이 내가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움직이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영화 작업 자체를 좋아한다. 감독님의 멋진 표현의 도구로 쓰이는 것도 매력적이다. 남의 인생을 사는 것도 재미있고, 내가 삭발하고 다른 얼굴로 나와서 미묘하게 관객들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순간도 즐겁다. 완성된 작품을 관객들이 바라볼 때 좋다. 한 작품이 또 끝났다. 한 책장에 DVD가 한 장 더 생겼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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