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韓 가스터빈…정부·발전사 도움 없으면 갈 길 잃어
[데스크칼럼] 韓 가스터빈…정부·발전사 도움 없으면 갈 길 잃어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19.10.11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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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에너지타임즈 편집국장-

【에너지타임즈】 일본의 전략물자수출규제 강화 등으로 발전기자재 국산화는 시대적 화두다. 때마침 두산중공업이 발전용 한국형 가스터빈 독자모델을 개발했다. 가스복합발전소와 열병합발전소를 독자적으로 설계하고 독자적으로 핵심기자재를 제적해 설치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갖췄다. 온전한 국산화가 가능한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아직 초기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년 본격적인 한국형 가스터빈 독자모델 개발에 나선 두산중공업은 정부예산 600억 원과 자체예산 1조 원으로 2010년 처음으로 출시된 H-클래스를 모델로 한 280MW급 가스터빈모델인 ‘DGT6-300H S1’의 개발을 완료하고 초도제품을 조립한데 이어 1년간 자체성능평가에 들어간 상태다.

두산중공업이 가스터빈을 개발했다는 것은 그 동안 GE(미국)·SIEMENS(독일)·MHPS(일본) 등으로부터 기술종속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가스터빈사업은 프린터기사업과 닮아 있다. 프린터기사업은 저렴한 프린터기를 판매한 뒤 부품인 잉크와 토너를 판매함으로써 수익을 내는 구조를 갖고 있다. 가스터빈도 마찬가지로 가스터빈 내 고온부품 등 소모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사업자가 수익을 벌어들이는 구조다.

발전공기업이 도입해 현재 가동 중인 가스터빈은 모두 59기다. 이 터빈은 모두 외산이다. 국산이 없어서다. 발전공기업은 가스터빈을 구매하는데 모두 2조3000억 원을 사용했으며, 5년간 유지보수를 위해 추가로 지불한 금액은 5156억 원에 이른다. 가스복합발전 설계수명이 30년인 점을 감안하면 가스터빈 구입비용보다 유지보수비용이 더 크다.

이 같은 이유는 가스터빈 국산화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와 함께 가스터빈이 국산화됐다는 것은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이 그 동안 연구로 가스터빈 관련 부품을 국산화한데 이어 정품으로 수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차량부품을 교체 시 정품과 비품을 소개하면서 정비사는 다소 높은 가격이지만 출시 당시 사용됐던 부품을 정품, 낮은 가격이지만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부품으로 비품을 각각 소개하는 게 일반적이다.

가스터빈도 마찬가지다. 현재 국산화에 성공했다고 말하는 가스터빈 부품들은 가스터빈 출시 당시 부품이 아닌 탓에 엄밀하게 말하면 정품은 아니다. 그렇지만 두산중공업이 개발한 가스터빈에 부품을 공급한 중소·중견기업에서 생산한 부품은 정품이 된다.

이뿐만 아니라 가스터빈 국산화는 수입대체효과를 기본적으로 기대할 수 있고, 가장 큰 기대효과로 기술종속에서 벗어나고 가스터빈 고장 발생 시 신속한 정비와 유지보수 등에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발전회사들은 고민에 빠져있다. 현재 개발된 가스터빈은 초기모델로 신뢰도가 높지 않은데다 타사가 조만간 효율이 높은 모델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가스터빈 개발 후 판로다.

실제로 미쓰비시와 히타치가 합병한 MHPS는 가스터빈 독자모델 개발 후 자국 간사이전력에 6기를 납품하면서 성능과 품질을 조기에 안정화시켜 이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56기를 수주하면서 GE 등 경쟁사를 단숨에 따라잡은 바 있다. GE는 가스터빈 초도제품을 우리나라에 16기 공급하면서 세계시장에 모두 900기에 달하는 가스터빈을 판매하는 기반을 딱은 바 있다.

두산중공업이 가스터빈을 개발한데 이어 초기시장을 확보하는 것은 국산 가스터빈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길을 여는 것이나 진배없다. GE나 MHPS처럼 이를 기반으로 세계시장에 당당히 노크할 수 있는 명분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후변화협약 등으로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초기시장 확보는 그만큼 중요한 셈이다.

다만 발전사업자가 두산중공업 가스터빈을 선택할지 여부는 여전히 물음표다. 제품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 않은 상황에서 조만간 타사에서 지금보다 효율이 높은 모델을 내놓으면서 두산중공업 가스터빈 초기시장 진출을 저지하기 위한 조치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두산중공업 가스터빈 개발 당시에도 제기된 바 있다.

두산중공업 측은 이 부분이 가스터빈 독자모델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됐다고 설명한 뒤 그렇지만 가스터빈 독자모델을 갖지 못할 경우 기술종속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기후변화대응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보이는 세계시장을 선점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가스터빈 독자모델개발 추진을 결정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GE나 MHPS 등의 가스터빈 초기모델을 실증하는 장소로 활용돼 왔다. 그 배경은 무엇일까. 바로 가스터빈 효율 탓이다. 현재 전력시장은 경제급전으로 급전순위가 정해지며 가스복합발전 급전순위는 바로 가스터빈 효율에 따라 결정되는 탓에 발전사업자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효율이 가스터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전력시장이 개선되지 않는 한 발전사업자는 두산중공업 가스터빈을 구입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특히 현재 추진되는 가스복합발전사업은 발전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컨소시엄이나 민간기업 단독으로 추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발전공기업이 가스복합발전사업을 단독으로 추진하는 경우는 드물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당장 두산중공업 가스터빈이 공급될 가능성이 크게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민간자본이 투입된 사업에 이를 강요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미 가스터빈 기술개발은 국책연구개발과제로 추진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다. 발전공기업에서 운영하는 설계수명이 다해가는 가스복합발전소를 두산중공업 가스터빈 실증단지로 활용할 수 있다.

남동발전 분당복합화력, 서부발전 서인천복합화력, 남부발전 신인천복합화력, 동서발전 일산복합화력 등이 해당 발전소인데 발전공기업이 이 발전소에 대한 성능개선사업이나 대체사업을 국책과제로 추진한다면 두산중공업은 가스터빈 초기시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발전공기업이 설계수명이 임박해가는 이 발전소에 대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 민간자본이 없다는 점, 이미 부지가 확보돼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두산중공업 가스터빈 초기시장으로 손색이 없다. 정부와 발전공기업만 결정을 한다면 안 될 일도 아니란 뜻이다.

인간도 태어나면 부모의 보호를 받고 성장하게 된다. 두산중공업 가스터빈도 일정수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보호가 필요하다. 이를 감안해 정부도 이 사업을 국책연구개발과제로 추진한 것이 아닌가싶다.

정부와 발전공기업이 외면한다면 두산중공업 가스터빈은 걸음마를 떼지 못한 아이와 건장한 어른이 싸움을 하는 것처럼 선발주자인 GE·지멘스·MHPS 등과 경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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