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가스공사 수장은 관료출신이란 공식 벗어던질 때
[데스크칼럼] 가스공사 수장은 관료출신이란 공식 벗어던질 때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19.04.2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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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에너지타임즈 편집국장
김진철 에너지타임즈 편집국장.
김진철 에너지타임즈 편집국장.

【에너지타임즈】 청와대가 가스공사 신임 사장으로 관료출신에 대한 검증을 진행했으나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하면서 인선작업은 최근 다시 시작됐고, 지난 19일자로 원서마감이 완료됐다. 아니나 다를까 원서접수기간 하마평에 유력하게 거론됐던 관료출신 등 외부출신들이 출사표를 던졌고, 내부출신도 출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가스공사 신임 사장 공모는 일종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 관례처럼 가스공사 수장 자리는 관료출신 자리란 공식이 굳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공모를 시작하기 전 하마평에 관료출신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앞선 공모에서도 관료출신이 유력하게 거론된 바 있다. 다만 청와대 인사검증을 통과하지 못해 낙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신이 몸을 담고 있는 조직의 수장이 되겠다는 꿈과 희망, 가스공사 직원들에게만은 남의 일이다.

가스공사는 1983년 설립됐다. 그리고 36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가스공사 수장으로 정치권·관료·학계·기업 등의 인사들이 번갈아가며 선임됐고, 이 계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내부출신이 한차례 있긴 했으나 임기 반만 채우고 도중에 하차한 정도가 전부다. 내부출신 수장이 재임한 기간은 36년간 1년이 고작인 셈이다.

어쩜 현재 분위기에서 가스공사 사장으로 외부출신이 선임되는 것은 그렇게 이상하거나 새로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에너지환경이 바뀌어도 가스공사 수장은 낙하산인사란 진리 아닌 진리가 돼 버렸다. 이제 고민을 시작할 때다. 너무나 비상식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시대적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현재에 만족하는 조직은 도태될 것이고, 시대적 변화를 읽어 낸 뒤 미래에 대비한 조직은 도약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에너지산업 역사에 이 같은 일은 반복돼 있다.

시대적 변화를 읽지 못하고 도태된 조직으로 석탄공사가 대표적으로 손꼽힌다. 석탄공사는 우리나라 공기업 1호로 자타가 공인하는 공기업 맏형이었다. 그러나 연탄수요 최고점을 찍었던 1988년부터 시작한 구조조정을 아직도 지루하게 진행하고 있다. 1983년 가스공사가 설립되면서 연탄만 난방연료란 공식이 깨졌기 때문이다.

석탄공사에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3년 가스공사가 설립되기 전 석탄공사는 정부로부터 조직 내 가스본부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했다. 미래를 읽어내고 대응방안을 내놨어야 할 수장이 이를 간과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손꼽힌다. 당시 석탄공사 수장은 군인출신이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한 동안 군인출신 인사들은 석탄공사를 이끌어왔다.

그 결과 도시가스배관망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확장되면서 국민연료로 손꼽히던 연탄은 뒷방으로 밀려났고 연탄이 국민연료 자리를 도시가스에 내준데 이어 서민연료란 수식어마저도 위협을 받고 있다.

반대로 내부출신 수장이 한전을 우리나라 최고의 공기업으로 도약시킨 사례도 있다.

1961년 한전이 설립되고 58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 내부출신 사장은 단 한 명이다. 내부출신인 이종훈 前 한전 사장은 1993년부터 1998년까지 5년간 한전 사장을 지냈다. 한전 역사에 그는 가장 오랜 기간 사장을 역임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한전 직원들이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사장이자 술자리에서 종종 술안주로 올리는 수많은 선배들 중 하나다.

이 前 사장은 대한민국에 원전산업을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 중 하나다. 그는 한전 직원으로 재직 당시 고리원전 1호기 건설부소장을 시작으로 20년간 원전건설현장을 누비며 원전 국산화를 이끌어냈고 한전 부사장 시절 국내 최초의 한국표준형원전인 영광원전(現 한빛원전) 3·4호기 개발책임자로 활동하면서 원전기술 자립이란 기반을 닦았다. 또 한전 사장 재임 당시 제3세대 국산원전인 신형경수로(APR-1400) 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한 결과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하는 기틀을 닦기도 했다.

특히 이 前 사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중유발전 중심의 발전시장을 원전산업뿐만 아니라 석탄발전과 가스발전 등으로 다변화시키는 한편 전력설비를 적기에 확충할 수 있도록 한전 직원들을 일심(一心)으로 역량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 결과 한전이 우리나라 경제발전 밑거름을 만들어냈다. 이를 기반으로 한전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실공이 최고의 공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됐다.

변하지 않는 조직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진리다. 기회는 위기가 되고, 이 위기는 다시 기회가 되는 등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석탄공사는 위기를 간과했고, 한전은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스공사 신임 사장 인선작업을 둘러싼 분위기는 전문성보다 배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안타깝다.

가스공사를 둘러싼 변화가 심상찮다. 에너지전환정책은 천연가스를 발전연료로 하는 가스발전을 늘리겠다고 하나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될 경우 가스발전 가동률은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조차도 힘들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가스발전사업자가 발전연료인 천연가스를 직수입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이들과 무한한 경쟁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또 수요관리 등으로 인해 난방연료수요도 줄어들 것으로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특히 수소경제시대에 가스공사가 연료공급만 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장인 수소경제를 이끌어갈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스공사는 도태와 도약이란 큰 기로에 서 있다. 시대적 변화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조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하게 꿰뚫어봐야만 할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래서 외부출신 수장이든 내부출신 수장이든 가스공사를 도약시킬 적임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다. 그렇지만 가스공사 신임 사장 인선작업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청와대나 현 정부는 적임자를 물색하는데 공을 들이는 것보다 보은인사에 방점을 찍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미 자리를 정해두고 공모란 형식을 빌려 행해지는 행태, 이 정도면 적폐가 아닌가싶다.

외부출신 수장들이 취임하면 1년차는 업무파악에 온전히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보은인사인 탓에 조직역량 등을 고려하지 않은 사업을 고집하는 등 무리한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MB정권 당시 가스공사가 추진했던 해외자원개발은 아직도 가스공사 직원들에게 상처로 남아 있다.

반면에 내부출신 수장은 오랜 기간 조직 내 몸을 담고 있으면서 구성원과 지근거리에서 함께 호흡했다는 것만으로도 당장 닥친 변화의 물결에 혼란을 주지 않고 스마트하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업무파악에 필요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한편 조직역량을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고 조직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때로는 외부출신 수장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다만 가스공사 직원들은 지금까지 내부출신 수장이 진두지휘하는 경영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조직역량이 어느 수준인지 가늠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셈이다.

가스공사 직원들은 스스로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만들어진 영웅보다 영웅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인재를 선임해줄 것을 36년간 기다렸고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젠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가스공사 직원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할 시점이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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