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길, 후회는 없다”
“노동자의 길, 후회는 없다”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10.03.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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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희 전국전력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전력노동자의 열악한 근무환경 경험 뒤 노동계 입문
전력산업구조개편 저지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

“언제나 힘들었던 곳이 노동계죠. 정년퇴직을 앞두고 가장 눈에 밟히는 것은 후배들입니다. 지금 노동계뿐만 아니라 한전도 인력감축 등 험난한 여정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40년 간 전력노동자 생활을 마무리짓고 국민으로 돌아가는 엄창희 전국전력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아쉬움이 남는 듯, 그 동안의 생활을 추억으로만 간직하려는 듯 애매한 이 같은 말로 시원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전력노동자로서 노동운동가로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한 시대를 살아왔던 그의 못다 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난 1970년 5월 한전에 입사하면서 엄 부위원장은 전력노동자의 길을 걸었고 1984년 노조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노동운동을 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은 열악한 근무환경. 당시 야근 중 천둥번개로 인해 선로사고가 발생하면 현장 직원들이 근무를 나갈 정도로 근무여건이 열악했고 장마철에는 안전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선로보수작업에 나서는 등 모든 것이 열악했다고 그 날을 떠올렸다.

이어 그는 “이러한 열악한 작업환경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무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사실 안전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노조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물론 지금은 근무여건 등이 비교적 좋아진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기자가 엄 부위원장과 사석에서 만난 자리에서 그 동안 전력노동자로 살아오면서 가장 아픈 적이 언제였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렵게 꺼낸 그의 입에선 죽어간 동료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70년대,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겠지만 전력노동자의 작업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동료가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는 순간에도 그것을 지켜만 봐야하는 마음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며 “변변한 보상금도 받지 못한 가족들은 지금까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가끔은 생각난다”고 말한 뒤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동안의 노조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해로 엄 부위원장은 1999년을 손꼽았다. 정부에서 전력산업구조개편 특별법을 제정해 한전을 분할하고 민영화시키려는 작업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999년 7월 1일 전력산업구조개편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당시 구성된 위원 9명 중 송·변전과 배전직군에서 혼자였다고 한다고 그날을 정확하게 기억해냈다.

비대위에 들어가게 된 배경에 대해 엄 부위원장은 “전력산업구조개편이 1차 적으로 발전분할과 매각을 하는 작업으로 송·변전과 배전분야에서는 한발 물러서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후 배전분할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비대위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송·변전과 배전분야 목소리를 혼자 대변해야했기 때문에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고 기억을 더듬어 냈다.

정년퇴직 이후의 생활에 대해 묻자 엄 부위원장은 4월부터 청주시내 한 복지관에 일주일에 3번 정도 방문해 식사준비도 돕고 청소도 하고 전기설비 등 점검을 해주는 일을 맡게 됐다고 한다.

이번 봉사활동과 관련해 그는 “제천사업소에 재직 당시 직원들과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있고 이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 동안 돌보지 못했던 몸도 챙기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른 뒤 무엇을 할 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엄 부위원장은 “노동자로 살아온 것에 후회는 없다, 다만 아직도 열악한 전력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후배와 동료들을 남겨두고 먼저 떠나는 것이 못내 미안할 따름이다”고 40년 전력노동자로의 삶을 마무리했다.

한편 엄 부위원장은 지난 1987년 초대위원장을 지낸 한전 제천사업소에서 29일 퇴임식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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