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유사한 법안 각각 발의돼…병합심사 이뤄질 것으로 전망돼
전기산업 육성 기본계획 수립과 실태조사 등의 법적인 근거 마련
남북 전기산업 교류·협력 명시…전기의 날 법정기념일 지정 포함
【에너지타임즈】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생산한 전력을 거래하는 전기사업 형태로 진화한 전기산업.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은 새로운 도전의 길이다. 새로운 변화에 전기산업도 한전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전기사업에서 새로운 신사업을 발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전기산업은 한전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탓에 정부의 도움 없이도 한전 중심으로 기술개발이 가능했고 전기산업과 관련된 실태조사나 데이터 관리 등이 가능했다. 이른바 한전이 곧 전기산업인 것이다.
그런데 에너지 전환이란 변화의 물결이 시작되면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이 다양화되고 발전공기업이 아닌 발전사업자가 등장한데다 전기자동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한전에서 직접 관여를 하지 않는 시장이 형성되는 등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서 새로운 전기산업이 필요한 시대에 이르게 됐다.
이뿐만 아니라 탄소중립에 따른 전력망 확충이 불가피한 가운데 지능화된 기자재 필요성이 제기되고 에너지 위기에서 필요성이 커진 에너지효율 향상을 위한 기자재가 필요하게 됐다. 그렇지만 최근 한전의 재정 상황을 고려하면 새로운 전기산업에 주축이 될 기술개발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일단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이유도 있겠지만 탄소중립에 따른 재정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도 있다.
그래서 한전은 더는 전기산업 전부가 될 수 없게 됐다.
그러면서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 필요한 전기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게 됐고, 전기산업계 숙원사업이었던 전기산업발전 기본법이 여당에서도 발의되고 야당에서도 발의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본지는 창간 15주년을 맞아 전기산업발전 기본법이 발의하게 된 배경과 함께 그 필요성을 짚어본다.
전기산업계라면 누구나 반기는 법이 바로 전기산업발전 기본법이다. 그러면서 이 법안의 제정은 전기산업계 숙원사업이 됐다.
이 법안은 국가 핵심 인프라로서 전기산업 핵심 가치를 대내외에 공포하는 한편 탄소중립 시대 전기산업 지속 발전을 위한 법적 지원체계 확립, 전기산업과 관련된 정책의 통일·체계성 확보, 개별 법률과의 관계 명확화, 디지털과 융·복합 산업화 대응을 통한 전기산업 범위 확장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이 법안은 현재 전기산업에서 탄소중립 시대에 맞는 미래 전기산업으로 가는 길에 필요한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전기산업발전 기본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본격화한 시점은 2019년 3월이다.
전기산업계 16곳 단체로 구성된 전기 관련 단체협의회는 당시 전기산업발전 기본법 제정 필요성과 법률(안) 제시를 위한 용역을 발주했고, 당시 한국법제연구원이 이 용역을 수주해 수행했다.
전기산업계 관계자 증언을 종합해보면 전기산업발전 기본법은 큰 틀에서 전기산업을 지원하고 육성할 목적으로 제정이 추진됐으나 실제론 전기공사업계 업역을 지키는 한편 확대하는 측면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이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전기산업발전 기본법을 대표 발의했다. 당시 이 의원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때다.
이 법안이 발의되자 정보통신공사업계가 반발에 나섰다. 당시 문제가 됐던 부분은 전기산업 범위에 지능형전력망 사업을 포함했다는 것과 함께 전기설비 기본개념을 포괄적으로 정의했다는 것인데 이 같은 측면에서 이 법안이 정보통신공사업과 부딪힌다는 것이다. 당시 정보통신공사업계 반발이 만만찮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기공사업계와 정보통신공사업계의 업역을 나누는 경계선이 애매했던 것이 이유로 손꼽힌다. 지능형전력망 사업이 그렇다는 얘기다. 지능형전력망을 전기공사로 볼 것이냐와 정보통신공사로 볼 것이냐다.
이 같은 논란 속에 결국 이 법안은 제20대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그리고 제21대 국회 회기가 시작된 2020년 10월 김주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전기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하는 한편 전기산업 토대 마련과 육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고 전기산업발전 기본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전기사업법이나 전력기술관리법 등 전기산업과 관련된 다른 법률이 있음에도 전기산업 기반조성이나 육성을 위한 근거로 부족하다는 지적을 보완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래서 전기산업 지속 발전 촉진을 도모할 수 있는 5년마다 전기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마련하는 한편 연도별 시행계획 수립·추진과 전기산업 실태조사 등이 이 법안에 포함됐다.
이뿐만 아니라 이 법안은 전문인력 양성과 고용 촉진을 위한 시책 수립·촉진을 비롯해 국제협력과 남북 전기산업 분야 상호교류 등 전기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정부 지원과 함께 전기산업 긍지와 자부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4월 10일을 전기의 날로 지정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 법안은 앞선 갈등이 해소했기 때문에 걸림돌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나 같은 해 5월 열린 법안소위원회에 상정되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 자리에서 전기사업법과 충돌한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전기 관련 단체협의회는 법안소위원회 지적사항 해소방안을 위해 전기산업발전 기본법 제정에 따른 연계법령 개정방안 연구용역을 법무법인 태평양에 의뢰해 전기사업법과 충돌되는 것이 아니라는 명분을 확보했다.
전기사업법은 전력을 생산하고 판매하기까지 관련된 사업에 필요한 법률이지 이외의 기술개발이나 전기산업 육성, 실태조사 등을 포괄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전기산업발전 기본법 제정을 위한 행보에 나섰다.
2022년 2월 산업부는 탄소중립 시대 전력산업 발전을 위한 법체계·개선과제 연구용역을 추진했다. 이 용역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전기산업 법적 지원체계 마련과 전기산업발전 기본법 체계와 연계 법안 개정방안을 분석하는 것으로 전기협회-법제연구원 컨소시엄이 이 용역을 수행했다.
같은 해 12월 이철규 의원(국민의힘)은 다시 전기산업발전 기본법을 대표 발의했다. 김주영 의원이 발의한 법안과 큰 맥락에서 다른 것이 없었다.
이로써 여당과 야당은 전기산업발전 기본법을 각각 발의한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발의된 2개 법안은 병합심사로 이뤄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본격적인 병합심사가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김주영 법안과 이철규 법안이 다른 점은 대표 단체를 어떻게 할 것이냐다.
전기산업계는 전기산업발전 기본법 제정엔 전적으로 동감하나 대표하는 단체를 어디로 할 것인지에 대해선 동상이몽이다. 이철규 법안에 산업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협회를 설립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별도의 협회 설립과 현재 운영 중인 협회 중 하나 선정, 다수의 단체 공동 등 다양한 방안이 가능해서 결국 전기산업계에서 대표 단체를 결정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면서 소통 단일화 차원에서 특정 단체가 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고, 그렇게 된다면 전기산업발전 기본법을 전담하는 단체로 오랜 역사와 함께 전기산업계 단체를 대표할 수 있는 전기협회가 가장 적합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현재 발의된 전기산업발전 기본법은 기존의 법률을 인정하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부분을 법제화하는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전기산업 관련 단체 중 전기공사협회나 전기기술인협회, 전기협회 등은 이 법안과 관련 없이 기존의 업무를 법률적으로 보장받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문제는 전기산업진흥회다.
그동안 전기산업 기술개발 등의 역할을 맡아왔던 전기산업진흥회는 법률적으로 이를 보장받을 수 있는 법률이 없어 전기산업발전 기본법이 이대로 제정된다면 이 법안을 전담하는 단체에 그 역할을 빼앗길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전기산업진흥회 고위관계자는 전기협회가 단독으로 전담하기보다 전기산업계 단체가 공동으로 대표한다면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일각은 전기산업발전 기본법 전담 단체가 이원화되거나 다수가 된다면 자칫 업무처리 과정이 복잡해져 정부가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조심스럽게 나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