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서부발전을 악마로 만든 것은 국가권력이다
[데스크칼럼] 서부발전을 악마로 만든 것은 국가권력이다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19.01.25 18: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에너지타임즈 김진철 편집국장-

【에너지타임즈】 지난달 11일 김용균 씨가 태안화력 9·10호기에 발전연료인 유연탄(이하 석탄)을 공급하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꽃다운 청년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 내가 죽어야 하냐고...

이미 예견된 사고가 아닐까싶다. 김 씨가 근무했던 곳은 석탄발전 내 작업장 중 가장 열악한 곳이다. 석탄이 옮겨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탄광에서 석탄을 채굴해서 이동시키는 현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작업자들은 지금도 흩날리는 석탄분진을 마시고 작업을 하고 있고,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석탄에 불안을 느끼며 작업을 하고 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진 석탄을 다시 컨베이어벨트로 올리는 작업과 연소된 석탄재가 보일러 내벽에 붙어 있는 슬러지를 제거하는 작업에서 대부분의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김용균 씨가 근무했던 현장은 이런 곳이다. 유족이나 시민단체 등이 요구하는 것처럼 책임자 처벌 등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책임자가 처벌을 받는다고 현장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 현장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리는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공기업이 움직인다는 것은 제도적이든 법적이든 분명한 근거를 갖췄을 때만 가능하다. 이유 없는 움직임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공기업 돈이 눈 먼 돈이라는 말이 있다. 충분한 명분을 갖췄다면 그럴 수도 있다. 다만 명분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림의 떡인 셈이다.

문제가 된 석탄취급설비 운전·정비업무시장은 왜 개방됐을까. 발전5사 의지는 아니었다.

한전은 별정직 직원들을 활용해 이 업무를 전담했으나 1992년 자회사인 한전산업개발에 수의계약으로 맡겼다. 그러나 한전은 2003년 공기업민영화정책 일환으로 한전산업개발 주식 51%를 자유총연맹에 매각했다. 민간 기업이 됐으나 한전산업개발은 발전5사로부터 이 업무를 수의계약으로 맡아왔다.

그러다 감사원은 2011년 감사결과를 통해 석탄취급설비 운전·정비용역을 민간발전정비업체 역량 강화를 위해 수의계약방식이 아닌 경쟁입찰방식으로 발주하라고 발전5사에 권고했고, 발전5사는 고민에 빠졌다. 한전산업개발에서 독점하던 이 시장을 개방하면 안정적인 연료공급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발전5사 노조와 한전산업개발은 반발했고, 발전사는 이 업무를 직접 맡는 것을 비밀리에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남동발전은 2011년 자회사인 한국발전기술을 설립했고, 이 회사는 2013년 영흥화력 5·6호기 석탄취급설비 운전·정비용역을 수주하면서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남동발전은 2014년 정부의 공공기관경영정상화대책 일환으로 비(非)핵심사업 지분매각을 통한 부채감축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한국발전기술 지분을 태광으로 매각했다. 당시 한국발전기술에서 보유한 기술력은 매각과정에서 기술진들이 대거 남동발전으로 복귀하면서 흔들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한국발전기술은 2015년 영동화력 1·2호기와 함께 문제가 된 태안화력 9·10호기와 태안IGCC 석탄취급설비 운전·정비용역을 각각 수주했다.

그렇다면 서부발전은 노조 반발과 안정적인 연료공급에 위협을 느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입찰에 나설 수 있었던 명분은 무엇이었을까.

2014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발전5사가 석탄취급설비 운전·정비용역을 경쟁입찰방식보다 12~13% 높은 수준에서 한전산업개발에 수의계약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듬해 국정감사에서 백재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 문제를 꼬집으면서 경쟁체제 전환을 주장했다.

서부발전은 입찰기준을 조정하지 않을 경우 한전산업개발이 수주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다른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입찰기준을 하향조정했으며, 한국발전기술은 태안화력 9·10호기와 태안IGCC 석탄취급설비 운전·정비용역을 수주했다.

국가권력은 김용균 씨가 속한 한국발전기술에 서부발전이 용역을 줄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들어준 셈이다.

이후 한국발전기술은 태안화력 1·2호기와 호남화력 1·2호기 등 석탄취급설비 운전·정비용역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이 사업을 포기한 바 있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이 사업을 한전산업개발이 맡는 기이현상도 나타난 바 있다.

현실화되지 못했던 전기요금도 이 현장을 위험으로 내몰아온 이유 중 하나로 손꼽힌다.

최근에 준공된 발전소를 제외한 대부분 발전소는 고열량탄을 발전연료로 사용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연료비용이 전기요금에 제때 반영되지 못하자 국가권력은 발전사에 발전단가를 낮추도록 독려했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지표는 국가권력을 표면화시킨 근거다.

그 결과 발전5사는 발전단가를 낮추는 방법을 찾았고, 상대적으로 값싼 저열량탄을 혼소할 경우 연료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혼소를 시작했다. 현재 이 부분에 대해선 발전5사가 세계 최고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그렇지만 발전설비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다. 문제는 저열량탄과 고열량탄을 혼소하면서 연료비는 줄었으나 발전설비가 원하는 열량을 맞추기 위해선 더 많은 양의 석탄이 공급돼야 한다는 것. 발전소 내 발생하는 대부분 사고가 저열량탄을 혼소함에 따른 것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일본은 고열량탄으로 발전을 하는 탓에 그 흔한 고장정지도 쉽게 발생하지 않는다.

현장작업자들이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진 석탄을 다시 컨베이어벨트로 올리는 작업을 서두르는 이유가 따로 있다. 상대적으로 컨베이어벨트에서 석탄이 많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저열량탄은 높은 휘발성을 갖고 있어 떨어진 석탄에서 자연발화 가능성이 높다. 이곳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석탄발전 보일러 내 연소된 석탄이 보일러 내벽에 붙어 있는 슬러지를 제거하는 작업도 저열량탄을 연료로 사용함에 따라 발생하는 현상 중 하나다. 이 슬러지는 석탄이 연소되는 과정에서 석탄재가 눌러 붙어 생기는 것으로 이 작업은 하늘에서 바위가 떨어진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위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발전5사는 저열량탄 혼소에 따라 안전설비를 보강했을까. 그랬다면 위험을 안고 저열량탄을 사용하는 의미가 희석됐을 가능성이 농후한 탓에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안전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법과 제도에만 맞춰 설비를 운영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부발전 한 직원이 안전설비 보강을 보고해봤자 헛수고란 표현은 이 같은 이유에서 출발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발전설비 관리기준이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점도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태안화력본부를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한 결과 1029건의 위반사항을 적발하고 6억67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일찍이 정부나 국회 등이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다면 이 같은 위반사항이 지금에서야 드러날 이유가 없잖은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적용하는 기준과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때 적용하는 기준이 달라지는 것은 국가권력이 깊숙이 개입돼 있음을 보여주는 단편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국가권력은 서부발전을 악마로 만들었다.

발전소 인근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발전소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발전소 사람들’이라 부른다. 물론 민원 등을 제기할 때는 ‘발전소 놈들’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들은 발전소에 근무하든 사람을 서부발전 직원이든 도급업체 직원이든 하청업체 직원이든 모두 이렇게 부른다.

김용균 씨 사망사고 전후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관련 도급업체 한 노조간부는 지난해 열린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참석해 엄밀히 따져 경상정비를 다른 도급업체 직원의 사망사고에 대해 동료가 죽었다고 언급한 뒤 앞으로 동료들이 죽지 않게 도와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일각은 이 간부의 발언을 두고 일하는 장소가 달라 일면식도 없었다면서 비꼬긴 하나 이들은 발전소란 한 공간에 함께 일하는 동료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 발전소에 근무하는 서부발전 직원들도 모두 이들의 동료다.

김용균 씨 사망사고를 둘러싼 여론은 발전사가 석탄취급설비에 투자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줬다.

서부발전은 당장 2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해 석탄취급설비 관련 근무자 환경여건 개선과 안전설비 강화 등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발전사도 이에 준하는 관련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이를 보는 여론은 차갑다. 다만 발전소 사람들은 발전사의 이 같은 행보에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대책을 마련할 수 있어 다행이라 말하고 있다.

발전소 사람들은 현장에서 국가권력이 제대로 작동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근데요 2019-01-25 23:58:36
여보쇼 뭔 소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