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천지)원전…주민 침묵하고 플랜카드만 아우성
영덕(천지)원전…주민 침묵하고 플랜카드만 아우성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15.11.04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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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찬반진영 구축되고 영덕에 탈핵전선 만들어져 이목 집중
주민투표율 관계없이 결과 공개…울진도 있다 5년 전 입장 고수
투표 후 찬반양측 분열 고조…자칫 영덕주민 관심서 사라질 수도
【영덕=에너지타임즈 김진철 기자】최근 언론지상으로 영덕이 원전을 둘러싼 찬반논쟁으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보도와 달리 영덕(천지)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정부 측 주장 ‘주민의견수렴’)란 결전의 날을 일주일가량 앞둔 영덕의 분위기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다만 유난스러운 것은 영덕군 내 곳곳에 뒤엉켜 걸려 있는 찬반 플랜카드. 11월 3일 영덕의 모습은 이랬다.

이날 경북 안동에서 국도로 타고 영덕으로 진입하자 가로수에 나란히 걸려 있는 영덕원전 찬반 플랜카드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렇게 늘어선 플랜카드는 중심지인 영덕군청으로 갈수록 크게 늘었다. 심지어 영덕고등학교 내 야구경기장 펜스에도 덕지덕지 어지럽게 걸려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2주 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 어색하다.

뒤늦게 탈핵전선이 영덕에 형성된 이유는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 원전을 둘러싼 굵직한 논쟁들이 정리됐기 때문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경주방사성폐기물처분장, 고리원전 1호기, 삼척(대진)원전 등이다.

영덕이 신규원전부지로 고시된 지난 2012년, 지역의 종교단체 등을 중심으로 한 반대여론이 존재했으나 이렇다 할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그리고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앞에서 언급한 원전을 둘러싼 논쟁들이 일단락되면서 영덕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무주공산(無主空山). 이 논란에 영덕군민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외부에서 수혈된 찬반 양측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 한수원이 부지를 매수하기 위한 부지보상 공고와 부지보상위원회 구성 등을 영덕군에 요청했으나 영덕군은 이를 보류했다. 이 프로젝트는 표류하기 시작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수원이 지난 7월 영덕사무소를 오픈했고, 탈핵을 주장하는 희망버스가 지난 8월 영덕에 도착했다. 이를 계기로 찬반 양측의 진영은 구축된 셈이다. 게다가 최근 원전공기업과 건설회사 등이 플랜카드를 걸면서 지원사격에 나섰다. 지금까지 영덕의 모습이다.

반대 측에서 주장하는 주민투표, 찬성 측에서 주장하는 주민의견수렴(편의상 주민투표로 표기).

영덕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는 영덕의 핵심뇌관이 됐고, 주민투표에 대한 공정성 등은 또 다른 갈등을 양산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영덕주민은…


오는 11일과 12일 영덕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는 영덕주민에게 어떤 의미인가.

찬반 양측은 주민투표 결과 반대가 압도적으로 우세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 결과는 영덕주민들이 이번 주민투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1시간 남짓 영덕군 읍내 곳곳에 걸린 플랜카드를 살펴본 결과 수많은 플랜카드 중 원색적이고 관련 기업에서 걸어놓은 플랜카드를 제외한 내용을 정리해보면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반대 측은 투표를 독려하고 있는 반면 찬성 측은 투표하지 않을 것을 독려하고 있다.

목욕탕에서 만난 40대 중·후반 한 주민은 주민투표에 참여할 것이냐는 질문에 “투표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이유를 묻자 “(영덕원전 유치를) 찬성하는 사람은 투표 안 하기로 했다”라고 답했다. 함께 온 다른 주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주민투표 결과는 정해진 셈이다. 반대하는 영덕주민들만 투표에 참여하고, 찬성하는 영덕주민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덕주민에게 이 같은 인식은 찬반 양측의 의견조율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탓인데 반대 측은 이번 주민투표가 영덕주민의 여론을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보고 있다. 반면 찬성 측은 법적인 효력이 없는 주민투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찬성 측의 이 같은 주장은 정부의 입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정부는 적법한 절차에 의거 신규원전부지로 고시됐기 때문에 국가사무에 해당하고 주민투표가 법적효력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삼척원전 주민투표 당시 주장한 바 있다. 현재도 같은 입장이다.

이 같은 찬반 양측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영덕주민들은 혼란에 휩싸여있다.

그렇다면 현재 판도라상자인 영덕군민들의 입장은 무엇일까.

영덕군 내 한 커피숍에서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무리 여성주민들의 대답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중 한 주민은 영덕원전 유치에 대한 의견을 묻자 “국가에서 하는 일이면 무조건 하겠지”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그럼 반대요”라고 답했다. 이유를 묻자 “병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주민은 “발전소 들어오면 병 걸린다고 하던데, 난 오래 살고 싶은데…”라고 농담이 섞인 대답을 하기도 했다.

노인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영덕주민은 국가에서 하는 사업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병이 걸린다는 것은 최근 언론지상에서 접한 여론이 영덕에 확산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수원 관계자는 “원전 내에서 운전하고 운영하는 직원들도 있다”면서 “유언비어(流言蜚語)에 불과하다”고 못 박았다.


반대 측은 투표율에 관계없이 결과를 공개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05년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유치를 찬성했다는 반대 측 관계자는 “당시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아니라) 원전이었다면 반대했을 것”이라면서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독일 등 선진국에서 원전을 폐쇄하고 있고 영덕원전에 사고가 발생하면 영덕에 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반대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주민투표율 관련 20% 수준을 점친 뒤 보궐선거 등의 투표에서도 투표율이 이 정도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궐선거 등에서 투표율이 20% 수준이더라도 개표하지 않느냐고 공개 이유를 제시했다.

또 이 관계자는 “(영덕은) 작은 동네로 이곳에서 지원과 예산배정 등 관(군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면서 “영덕에 600여명의 공무원이 있고, 이들의 친척들을 합치면 관련되는 영덕군민이 1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3만 여명의 영덕군민 중 1/3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이번 주민투표에 참여하는 영덕주민은 돌을 맞을 각오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 관계자는 정부와 한수원의 지원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올해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이희진 영덕군수가 특별법을 만들어달라는 요청한 이류를 여기서 찾았다. 이미 많은 거짓말을 했다고 덧붙였다.


찬성 측의 입장을 보인 한 이장은 “(원전이) 울진에 있으나 영덕에 있으나…”라고 5년 전 본지에서 취재하던 당시와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찬성 측의 분위기와 관련 최근 이장협의회에서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투표에 나서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특별하게 반대하는 이장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 이장은 “(영덕원전 유치를 희망하는 영덕군민들은) 울진에도 원전이 있는데 영덕에 원전이 있는 것이나 뭐가 다를까”라고 말하는 등 그 동안 한울원전으로 인한 학습효과가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영덕주민들이 원전이 안전한지는 잘 몰라도 울진에서 운영되는 걸 보고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그는 영덕원전의 유치를 찬성하는 이유로 인구유입과 경제 활성화를 손꼽았다. 원전건설과정에서 인구가 대거 유입되고 원전운영과정에서도 체류하는 인구가 늘어나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고, 원전 유치로 인한 지원금이 영덕군의 재정을 튼튼하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영덕군의 재정자립도는 8% 수준으로 최하위다.

영덕군청 관계자는 재정자립도가 얼마나 심각하냐는 질문에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공무원들의 급여를 줄 수 없을 정도”라면서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현재 지난 2005년 조성된 영덕풍력발전단지(1.65MW×24기)가 영덕군에 내는 지원금이 매년 3000만 원 수준인 반면 영덕원전 1·2호기 건설로 영덕군은 설계수명기간인 60년 동안 335억 원에 달하는 일반지원을 매년 받을 수 있게 된다. 또 원전건설기간 중 특별지원으로 2302억 원이 영덕군에 지원된다.

이희진 영덕군수가 주민투표를 반대하고 있으나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과 관련 이 이장은 “조속히 입장을 정리하고 영덕주민들의 구심점이 돼야 할 것”이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영덕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결과는 결국 찬반 양측의 분열은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쪽도 승복하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이번 주민투표의 객관성·공정성 등이 논쟁의 핵심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대 측 단독으로 추진되다보니 찬성 측은 부정투표 등을 이유로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기존의 입장을 고수할 것이 자명하다. 반면 반대 측은 주민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반대여론을 확산하는 여론몰이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영덕군청은 찬반 양측의 입장이 더욱 팽팽해지고,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특히 영덕군민들이 빠진, 주객전도(主客顚倒) 상황에서 영덕원전 유치에 초점이 맞춰졌던 논쟁이 탈핵논쟁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것이 아직 유치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일부 영덕군민들의 생각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영덕 외곽의 한 상점에서 만난 노년층 한 주민은 “한 번은 스피커 켜고 주민투표 하라고 떠들고 한 번은 큰 텔레비전 달고 떠들고 시끄러워 죽겠다”라면서 “우리 일에 와 감 나라, 배추 나라 하노”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영덕원전 유치 찬반논쟁을 떠나 영덕주민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경우 앞으로 더욱 더 수용성여부를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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