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형원전(OPR1000)…설움으로 시작한 31년 발자취
한국표준형원전(OPR1000)…설움으로 시작한 31년 발자취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15.08.0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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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기술자 어깨너머로 원전 보며 원전자립 꿈에 불 지펴
영광원전 #3·4 산파역할…첫 원전인 한울원전 #3·4 준공
신고리원전 #2 상업운전으로 꼬박 31년의 대장정 마무리
【에너지타임즈】우리나라 에너지자립의 꿈과 원전수출국으로 도약시키는 산파역할을 톡톡히 한 한국표준형원전(Optimized Power Reactor 1000) 프로젝트가 31년 만에 모두 마무리됐다.

31년 전 우리나라 원전자립의 꿈은 설움에서 시작됐다. 외국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원전의 꿈을 가진 종사자들은 외국기술자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그들의 어깨너머로 노트에 원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작은 꿈들이 모이고 모이면서 한국표준형원전을 건설하겠다는 꿈에 불이 지펴졌다.

정부는 지난 1984년 7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원전건설기술자립계획을 추진키로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형표준원전인 한울원전 3·4호기는 지난 1992년 5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한빛원전 5·6호기와 한국표준형원전의 결정판이라 불리는 한울원전 5·6호기로 이어졌다.

한국표준형원전이 한 단계 더 진화되는데 바로 개선형 한국표준형원전이다. 이렇게 건설된 원전이 바로 신고리원전 1·2호기와 신월성원전 1·2호기다.

이로써 우리나라 마지막 한국표준형원전이자 우리나라 24번째 원전인 신월성원전 2호기가 지난달 본격적인 상업운전을 하면서 설움에서 시작됐던 지난 31년의 대장정은 막을 내리게 됐다.

꼬박 31년, 한국표준형원전 프로젝트 발자취를 살펴보자.


한국표준형원전(Optimized Power Reactor 1000). 이 모델은 우리나라 에너지자립과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원전기술에 대한 독립의 열망이 모이고 모이면서 개발이 본격화됐다.

이 모델이 개발되기까지 숱한 설움과 인고가 이어졌다. 이 땅에 우리의 원전 3기가 건설되는 동안 우리는 멀리서만 지켜봐야 했다. 당시 한 종사자는 건설현장에 접근하는 것마저 제재를 당했다고 한다. 또 다른 종사자는 군용 망원경으로 원전이 건설되는 것을 지켜봤다고도 했다. 이때 눈에 보이는 것만 노트에 빼곡하게 적어둔 기술들이 한국표준형원전을 건설할 수 있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건설은 외국주계약자가 발전소 착공부터 준공까지 모든 책임을 지고, 사업관리·설계·자재구매·시고·시운전 등을 수행하는 일괄발주방식으로 진행됐다. 우리는 사업관리와 시운전에 대한 경험을 축적하는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건설된 원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원전인 고리원전 1호기다. 또 얼마 전 계속운전을 시작한 월성원전 1호기와 고리원전 2호기.

모두가 서러웠다고 회상한다.

이후 한전은 외국기술에 의존하긴 했으나 원전 3기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어 기존의 일괄발주방식에서 분할발주방식으로 계약방식을 변경했다. 원전건설자립의 초석을 놓은 셈이다. 이때 건설된 원전은 고리원전 3·4호기, 한빛원전 1·2호기, 한울원전 1·2호기 등 모두 6기다.

당시 한전은 사업관리를 주도했고, 종합설계용역·원자로·터빈·발전기·원전연료·시공 등 분야별로 분할해 계약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면서 외국 주계약자 아래 우리 업체들이 하도급으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원전기술축적이 가능한 기반을 만들었다.

이와 함께 정부도 원전기술자립을 위한 호흡을 같이 했다. 지난 1984년 7월 동력자원부(現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 경제성 제고방안을 수립한데 이어 기술자립을 위한 방향과 역할분담을 확정하는 등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원전건설기술자립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한국표준형원전 프로젝트는 이를 태동의 시점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마지막 한국표준형원전인 신월성원전 2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2015년 7월까지 무려 31년, 372개월 대역사의 시작점이 됐다.

한국표준형원전 효시는 한빛원전 3·4호기다.

한전은 국내기업을 분야별 주계약자로 하고 외국 기업을 국내 주계액자의 하도급자로 참여토록 하는 국내 주도계약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본격적인 기술자립에 나섰다. 순수 국내 기술진에 의해 건설된 우리나라 원전건설기술의 집합체로 평가받았다. 이는 명실상부한 원전건설기술자립이 달성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초창기 설움과 우리가 주도한 한빛원전 3·4호기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역할은 산파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드디어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표준형원전인 한울원전 3·4호기가 건설을 시작했다.

지난 1990년 7월 정부는 제225차 원자력위원회에서 한울원전 3·4호기 건설추진계획을 의결했다. 그러면서 한울원전 3·4호기 건설공사는 지난 1992년 5월 본격화됐다. 모두의 기대 속에 건설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한울원전 3호기는 1998년 8월, 한울원전 4호기는 1999년 12월 각각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세계원전시장도 우리의 원전기술자립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도왔다. 지난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원전사고가 그것인데 당시 세계원전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들면서 원전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은 판로를 찾지 못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쉽게 원전기술을 전수받은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세계원전 역사에서 체르노빌원전사고는 치욕을 안겨준 역사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디딤돌 삼아 원전기술자립의 시간을 앞당길 수 있게 됐다.

한국표준형원전 두 번째 프로젝트는 한빛원전 5·6호기. 이 원전은 한울원전 3·4호기 건설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진일보된 기술로 건설됐다. 건설기간 중 영광군이 건축허가를 취소하면서 건설이 중단되고 온배수문제 등 숱한 난관을 뒤로하고 한빛원전 5호기는 2002년 5월, 한빛원전 6호기는 같은 해 12월 각각 준공됐다.

세 번째 프로젝트는 한국표준형원전 결정판인 한울원전 5·6호기. 원전핵심설비인 증기발생기 재질을 인코넬-600에서 인코넬-690으로 변경 등 원전의 안전성은 강화됐고, 선행호기 운전경험을 반영해 운전과 유지보수의 편의성이 크게 향상됐다.

6기의 한국표준형원전이 모두 건설되고 한 단계 진화의 과정을 거쳐 개선형 한국표준형원전이 개발돼 화려한 꽃을 피우게 된다. 신고리원전 1·2호기와 신월성원전 1·2호기.

특히 신월성원전 1·2호기는 한국표준형원전 설계개선 1·2단계 사업을 통해 일체형원자로상부구조물과 복합건물 등 97개의 개선사항을 반영해 건설됐다. 기존 원전대비 안전성과 경제성을 크게 향상시킨 것은 물론 원전종사자의 운전 편의성과 방사선피폭저감 도모, 합성구조물공법과 원자로 냉각재계통 자동용접 등 신공법을 적용했다.

신월성원전 2호기는 한국표준형원전 프로젝트의 마침표를 찍었다. 신월성원전 2호기는 우리나라 24번째 원전으로 지난달 본격적인 상업운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는 한국표준형원전은 건설되지 않는다.

한국표준형원전 프로젝트의 마지막은 화려했다. 지난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양일 간 상업운전 중인 23기의 원전과 시운전중인 신월성원전 2호기가 전력을 생산하면서 우리나라 최초로 24기 원전이 모두 전력을 생산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 2011년 7월부터 40일가량 당시 21기의 원전이 모두 가동된 적이 있긴 했으나 24기가 동시에 가동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수원 측은 앞으로 운영원전이 늘어나게 되면 모든 원전의 동시가동은 힘들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경수로는 1년 6개월에 한 번씩 가동을 멈추고 한 달가량 연료교체와 정비를 시행하고, 최근까지 월성원전 1호기 운영허가기간 만료로 가동을 멈추고 있어 모든 원전의 동시가동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원전기술의 자립이란 작고 작은 꿈들이 모여 시작된 한국표준형원전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크게 일조하는 동시에 에너지자립의 꿈과 원전수출국으로 도약시키는 산파역할을 톡톡히 하고 역사의 한 자락이 됐다. 꼬박 31년, 372개월 동안 원전 10기가 건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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