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신화 김한민 감독, 다음 영화는 한산도대첩
'명량' 신화 김한민 감독, 다음 영화는 한산도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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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8.2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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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영화는 돈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영화를 예술과 산업의 경계에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영화는 붓과 물감과 캔버스만으로, 종이와 펜으로 탄생하는 예술과 다르다. 영화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장비와 인력 모두 돈이다. 그래서 영화감독들은 대부분 흥행성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하지만 흥행성공은 누구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측을 완전히 빗나가기도 한다. 가까운 예로 영화 '아저씨'로 흥행감독 반열에 오르는 듯했던 이정범 감독의 신작 '우는 남자'가 이토록 참담한 성적표를 받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래서 영화는 흔히 로또에 비유된다. 감독이 자신의 영화 흥행성적을 확신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객기다.

그런데 여기 "700만 관객 정도는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하는 감독이 있다. 바로 영화 '명량'의 김한민(45) 감독이다.

'명량'은 1000만명은 물론, 1500만 관객을 가뿐히 넘어섰다. 개봉 21일 만이었다. 이제 '명량'을 두고 2000만 관객을 말하는 이도 있다. 올여름 개봉한 대작 영화 세 편 '군도'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1주 간격으로 관객을 만나게 됐을 때 '명량'의 압도적 우위를 점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군도'의 1000만 관객을 예상한 관계자가 더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보는대로다.

김한민의 '확신'을 결과론적인 발언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명량'의 제작비에 있이다. 이 영화는 순제작비만 150억원이 투입된 대작이다. 마케팅 비용 같은 것을 더하면 제작비는 더 커진다. 최소한 600만명이 봐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고, 투자자를 최소한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700만 관객이 필요하다. 말이 700만명이지 이 수치는 일반적인 예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런데 김한민은 밀어붙였다. 그를 탁월한 연출가로 볼 수는 없어도 최소한 흔치 않은 통찰력을 지닌 기획가로 부를 수 있는 까닭이다.

"죄송합니다." 김한민 감독은 인터뷰 일정을 연기했다. 신경통이 문제였다고 한다. "영화 촬영 내내 신경써야 할 게 많았어요. 최선을 다했거든요."

"불안했죠. 불안했습니다. 촬영 내내 의구심이 들었어요. 당연히 '관객이 이 영화를 좋아해줄까'라는 게 제가 고민했던 지점입니다."

김한민이 '명량'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사람들은 될 거라고 말했다. 이순신이라는 소재는 평범해 보이지만,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다. 관객이 보고싶어할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예상했다. 하지만 김한민이 제작비 이야기를 꺼내자 상황은 달라졌다. '명량'의 제작비는 평범한 예산의 영화 서너편은 만들 수 있는 액수다.

"그런 반응을 이해 못했던 건 아니었어요. 당연한 반응이죠. 하지만 전 화석화된 이순신,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이순신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지점에서 제가 집중했던 게 바로 해전입니다. 모두가 이야기만 들었던 그 전투를 보여줬을 때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고 봤던 거죠. 특히 젊은 사람들 한테요. 그래서 계획한대로 밀고 나간 겁니다."

예상은 적중했다. '명량'에 대한 감상평은 대체로 비슷하다. 전반부 이순신의 고뇌 드라마는 지루한 감이 있지만, 후반부 61분 동안 벌어지는 해상전투 장면은 훌륭하다는 것이다. 북미 언론의 평가도 비슷하다. 이순신이 빛을 발하는 것은 그가 전장을 누비면서부터다.

김 감독은 영화의 성공에 대한 미디어의 해석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영화에서 보여준 이순신의 리더십이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연결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순신의 대사 중에 이런 게 있잖아요.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말이요. 이게 핵심이 아닌가 싶어요. 이순신은 결국 백성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잖아요. 그 모습에 뒤에 물러서 있던 그의 부하들이 전투에 참여하기 시작했고요. 그 모습을 보고 산에서 전투를 보고 있던 민초들까지 이순신을 돕죠. 리더십을 통한 일종의 화합이에요."

김한민이 봤던 것도 그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를 "리더십이 부재하고, 다양한 갈등이 반복되는 곳"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세월호' 침몰 사고라는 비극에서 국민이 본 것 또한 리더십의 부재였다. 해전을 좋아할 젊은 관객, 성웅 이순신에 대한 중장년층의 호응, 사고를 통해 국민이 느꼈던 공허함을 '명량'은 두루 채웠다.

"정말 안타깝고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진도는 명량과 가까운 곳이기도 하잖아요. 꼭 한 가지가 아닌 명량의 다양한 요소가 한국 사회의 뇌관을 건드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명량'이 만들어지기까지 프레 프로덕션 과정까지 합하면 4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촬영에만 2년이 소요됐고, CG 등 후반 작업도 1년을 넘겼다. 그리고 김한민은 이 기간을 "최선을 다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 잘 된 작품이 아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죠. 배우, 스태프 모두 최선을 다했어요. 최민식 배우와는 호흡이 정말 잘 맞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이순신과 최민식 배우가 생각하는 이순신이 거의 일치했죠. 류승룡 배우는 프로였습니다. 그를 보면서 프로란 이런 것이라는 걸 느꼈죠. 스태프들도 고생 많이 했고요."

고생 끝에 한국 영화사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역대 최다 관객 영화에 '명량'을 올려놨지만, 그는 아직 이 기쁨에 함께 하고 있지 못했다. "나는 감정을 늦게 느끼는 편"이라면서 "감독이라는 존재가 그렇다"고 고백했다. "감독은 언제나 냉철해야 한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어야 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명량' 촬영 내내 그랬다. 일종의 직업병 같다."

성공의 기쁨을 말하기 보다는 영화감독의 고단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권력보다 책임감이 더 크다"는 요지다.

"많은 분들이 축하도 해주고, 저의 성공을 이야기해요. 하지만 전 이 일이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어요. 제 데뷔작인 '극락도 살인사건'은 정말 7전8기 작품입니다. 7년 동안 실제로 7번 가깝게 엎어졌죠. 두 번째 작품인 '핸드폰'은 흥행성적도 안 좋았어요. '최종병기 활'이 성공을 하긴 했지만 정말 고생하면서 찍었고요.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전 누가 영화감독 하고 싶다고 하면 말려요."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던 감독이 상황을 반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치열함이다. 이미 차기작의 시나리오를 완성해놨다. 제목은 '한산: 용의 출현'이다. 앞서 밝힌대로 그는 이순신 3부작을 내놓을 계획이다. '명량' '한산' '노량' 순이다. 그리고 그는 의도적으로 가장 드라마틱한 전투였던 명량대첩을 첫 번째로 배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산'의 핵심은 거북선입니다. 많은 분들이 한산도대첩은 이순신의 함대가 와카자키의 수군을 물리쳤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더 재밌는 내용이 많아요. 또 두 나라의 장수 모두 선제 공격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어요. 내가 원하는 전장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선제공격을 놓고 두 장수가 고민하는 모습을 통해 극의 긴장감을 높일 생각입니다."

김한민 감독은 "내가 제작을 하는 이유는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알기 위해서"라며 "돈은 신경 안 쓰고 작품만 만들면 된다는 감독도 있는데, 난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머리는 이미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아직 교통정리가 안 됐어요. '한산'이 언제 개봉한다는 건 말씀 드릴 수 없어요."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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