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 주롱섬 해저 암반동굴 원유저장시설을 가다
싱가폴 주롱섬 해저 암반동굴 원유저장시설을 가다
  • 정연진 기자
  • pressj@energytimes.kr
  • 승인 2010.10.22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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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34m, 총 연장 11km 해저 동굴 뚫어 원유 저장
현대건설, 2014년 완공…한국 지하비축기술 ‘세계화’
[싱가폴=정연진 기자] 지난 14일 오후 2시 싱가폴의 남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주롱섬(Jurong Island). 인천국제공항에서 싱가폴 창이(Changi)국제공항까지 비행기로 6시간, 자동차로 갈아타고 40분 남짓 걸리는 곳이다.

기자와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차세대 에너지리더 과정’ 싱가폴 연수생 40여명은 전세버스 2대에 나눠 타고 현대건설이 시공중인 주롱섬의 암반동굴(JRC : Jurong Rock Cavern) 원유 저장시설로 향했다.

주롱섬은 애초에 여러 개로 흩어진 군도(群島)였으나 싱가폴 정부가 ‘아시아 오일허브’ 구축을 위해 1987년부터 단계적으로 매립을 시작, 지금은 하나의 섬으로 연결됐다. 현재 면적은 550ha인데 앞으로도 매립사업을 계속해 977ha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자동소총 무장, 섬 출입자 검문검색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 수준의 한가로운 도로를 달려 주롱섬 근처에 이르자 바닷가 쪽으로 대형 크레인과 수없이 적재돼 있는 컨테이너들이 일행을 맞았다. 현지 가이드는 “싱가포르는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부두”라며 “하루에 1만 여대에 이르는 선박들이 항구를 드나든다”고 설명했다.

주롱섬의 출입관리소 분위기는 그야말로 삼엄했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과 경찰들이 방문자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확인하고, 소속과 이름 등이 기재된 출입증을 가슴에 달게 했다.

핑크색의 신분증을 제시하는 싱가폴 시민권자만 바로 통과하고, 영주권자도 따로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외국인은 반드시 여권을 소지해야 하고, 카메라는 아예 ‘압수’해 출입관리소에 보관했다.

자가용 승용차뿐만 아니라 주롱섬을 매일 드나들법한 화물차들(출입증을 부착했다)도 예외는 없었다. 경찰들이 운전석과 화물칸, 트렁크를 모두 열고 검문했다. 여기로 하루에 3만여명이 출퇴근을 한다니 “싱가폴 전역에서 출퇴근 교통체증이 있는 유일한 곳”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 졌다.

마중 나온 현대건설과 JTC직원들이 “매일 출근하는 우리 직원들도 빠짐없이 검문검색을 받는다”며 일행들을 ‘위로’했다. JTC는 싱가폴 정부 투자기관으로 주롱섬 개발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섬 안으로 들어서자 도로 양쪽으로, 육안으로는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돔 형태의 원유 비축시설과 시추선(試錐船)으로 보이는, 건조(建造)중인 선박과 화물선들이 정박해 있다.

<>엑슨·쉘·보팍 등 굴지의 석유화학사 입주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우리나라의 울산, 여수화학단지를 연상케 하는 석유·화학시설들이 펼쳐졌으며, 세계 최대의 석유회사인 엑슨모빌과 쉘, 세계 최대의 원유 및 화학제품 저장사업자인 보팍(Vopak), 세계 최대의 종합화학업체인 독일 바스프(BASF) 등 유수 메이저기업들이 차창을 스쳐갔다.

10여분을 달리자 현대건설 로고가 박힌 대형 크레인이 보이고, 그 옆에 있는 현대건설의 주롱섬 현장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용 소장이 일행을 반갑게 맞았고, 암반동굴 원유 비축기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김 소장은 “폭 20미터, 높이 27미터의 비축시설들이 촘촘히 들어서게 되며 2014년 완공되면 1000만 배럴를 저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사현장은 주롱섬 반얀 해역의 작은 만(灣). 만의 양쪽에서 원기둥 모양의 지하 134m 깊이 수직 터널을 뚫고, 이 수직터널을 지하에서 수평으로 연결해 원유 비축시설로 사용하는 것이다. 수직 단면도를 보면 L자형이다. 터널 외부는 혹시 있을 기름 유출을 막기 위해 물과 기름의 분리막 성질을 이용, 워터 커튼(water curtain)을 친다.

<>한번 발파 4m 전진, 24시간 더위와 사투

안전교육을 받은 후 안전모와 안전벨트, 장화를 갖추고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지하 134m로 내려가는 터널 입구. 크레인을 겸한 대형 엘리베이터에 24톤 골재트럭이 실려 지하에서 올라와 일행들을 놀라게 했다. 총 하중 45톤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엘리베이터란다.

지하 현장은 후텁지근했다. 신기하게도 싱가폴의 상온(常溫)인 30도 안팎이 유지된다고 했다.

2교대로 작업은 24시간 내내 진행된다. 대형 드릴이 천공을 마친 자리는 다이너마이트가 채워진다. 한번 발파 때 24톤 트럭 150대 분량의 암석과 토사가 쏟아져 내린다. 현장 가까운 곳에 혹시나 있을 긴급상황에 대비해 300명이 한꺼번에 피난할 수 있는 대피소도 마련돼 있다.

터널은 총 연장 11km를 뚫어야 하는데, 현재 공정은 1km. 설계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됐고 최근 착공에 들어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더딘 속도다. 다름 아닌 지질구조가 물이 잘 스며드는 사암(sand stone)이기 때문에 공사 진행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김 소장은 “동굴내로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양의 물이 들어와 그라우팅작업에 시간이 걸린다”면서 “한국에서라면 공사를 중단할 정도로 악조건”이라고 말했다.

허식 전 석유공사 비축기지 본부장은 “현대건설 등 한국기업의 원유 지하저장시설 기술을 세계 최고”라며 “국내에는 미국과 일본, 중국보다 많은 지하비축기지가 건설돼 있다”고 설명했다.

주롱섬 암반동굴 원유 저장시설은 오일허브를 지상에서 지하로 확장하는 사업이다. 땅이 좁기 때문이다. 싱가폴의 영토는 서울면적의 1.17배에 지나지 않는다. 2008년 현재 1965년 독립 당시 보다 면적이 22%나 증가했지만 매립사업을 계속될 예정이다.

현재 건설중인 지하 비축기지의 저장량은 1000만 배럴인데, 앞으로 주롱섬은 물론 본섬까지 지하 저장시설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1000만 배럴은 우리나라가 5일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이지만 싱가폴의 인구가 500만명으로 우리의 1/10인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물론 싱가폴은 대부분의 에너지를 말레이시아에서 파이프라인으로 끌어온 천연가스(PNG)로 충당하지만 말이다.

<>싱가폴 정부 저장 시설 확대 계획

JTC사 관계자는 “정부 관리들과 전문가들이 주롱섬 프로젝트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본섬 지하로 저장시설을 확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0여분의 짧은 현장 견학을 끝내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현대건설 근무 30년 중 해외현장에서 20년 일했다”는 김용 소장의 담담한 인사말이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울렸다.

싱가폴이 아시아의 오일허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중동원유의 아시아지역 이동 경로인 탓이다. 중동산 원류를 싣고 아시아로 이동하는 모든 유조선은 반드시 싱가폴 인근의 말라카(Malacca)해협을 거쳐야 한다.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을 제외하고, 한중일 동북아 3개국만 해도 전세계 석유 사용량의 19%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말라카해협의 원유 물동량은 엄청나다.

또 싱가폴에서 중동산 원유의 유가가 결정된다. 전세계적으로 WIT유와 브랜트(Brent)유, 두바이(Dubai)유 등 3대 유종(油種)이 있는데, 바로 싱가폴에서 두바이유 시장이 형성돼 유가가 결정되고 거래가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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