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원전 30주년의 의미
우리나라 원전 30주년의 의미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08.06.0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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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원전 기술개발·정착에 30년!
① 원전 기술개발·정착에 30년!
② 미래산업으로 도약하는 30년!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이하 원전)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원전업계 분위기는 들떠있다. 최근 원전을 확대한다는 장밋빛 전망을 안고 완전한 기술자립이라는 숙제도 풀었다. 우리 기술만으로 원전을 건설할 수 있게 된 것. 또 원전 대국이라는 꿈은 현실로 다가왔다.

그 동안 우리나라 원전은 국가를 지탱해온 버팀목 역할을 했다.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전력을 생산해 국가경제의 활력소가 됐다. 또 에너지 자립이라는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서는 등 전력산업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1970년대 두 차례 걸친 오일파동 이후 본격화됐다. 우리나라의 원전산업은 단순한 전력생산으로 시작됐지만 지금은 강화된 환경규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어 앞으로 원전의 중요성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대응과 새로운 먹거리 창출, 업계 전문가들은 지난 온 30년과 달리 새로운 모델의 원전 정책이 추진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바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새로운 수출의 길을 열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의 핵심으로 부각될 것이란 것이 중론이다.

이에 본지는 원전 30주년을 맞아 그 동안 우리나라 원전이 걸어온 30년과 앞으로 열어가야 할 30년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주>



“도입은 초라했으나 기술자립으로 결실 맺어”
-1962년 TRIGA Mark-Ⅱ 연구용 가동…최초 고리원전 가동 스타트
-OPR1000 독자 브랜드 ‘Made in korea’ 달고 미래로 해외로 질주


우리나라 역사에 원전이 발을 붙여놓게 된 것은 지난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리원전 1호기가 준공되면서 우리나라의 원전 역사는 시작됐다. 이후 30년 동안 20기의 원전을 가동하는 원전대국으로 성장했다. 총 원전발전설비용량은 1772만kW, 세계 6위의 원전대국으로 자리매김 했다.

원전 도입을 위한 움직임은 일찍이 있어왔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설립되기 전인 1955년, 우리나라는 미국과 원자력협력협정을 체결하고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등 활동을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이듬해 3월 문교부 산하 기술교육국 내 원자력과가 신설되기도 했다.

그리고 1958년 2월, 원자력관계법의 모법인 원자력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다시 이듬해 1월 최초의 원자력 전문부처인 ‘원자력원’이 정식 발족됐다. 이러한 움직임은 1962년 우리나라 최초 연구용 원자로인 TRIGA Mark-Ⅱ를 가동시키는 기반이 된다.

당시 우리나라 전력상황은 자본이 적게 드는 수력발전이 발전원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고 무연탄 개발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러나 원전이 본격화되고 가속된 시점은 따로 있다. 바로 1970년대를 강타한 석유파동.


1970년대 석유파동 위기서
원전산업 성장 발판 마련


1973년 세계가 석유파동에 휩싸이면서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석유가격이 천장부지로 뛰어오르자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결단을 내린다. 바로 원전이다. 이미 고리원전 1호기가 착공한 상태였지만 이후에 건설된 월성원전 1호기 등 5기의 원전 건설계획이 바로 이 시점에 결정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의 원전 도입단계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기술과 경험이 없이 시작된 만큼 원전건설은 원전 종주국인 미국과 프랑스 등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내공을 쌓아왔다. 고리원전 1호기 준공 이후 월성원전 1호기와 고리원전 2호기, 월성원전 2∼4호기 등이 준공되면서 우리나라 전력공급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원전 기술의 자립과 다목적 연구로 자력 설계·건설 사업이 추진되는 등 기술자립의 틀을 갖춘 시기로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가동되고 있는 원전은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 고리원전 1·2호기와 월성원전 1호기는 기술의존기(1955∼1983년), 고리원전 3·4호기와 영광원전 1·2호기는 기술축적기(1983∼1989년), 영광원전 3·4호기와 월성원전 2∼4호기, 울진원전 3·4호기는 기술자립기(1989∼1999년)로 각각 구분할 수 있다.


분할발주방식으로 변경
기술 축적의 새로운 도전

최초의 원전 건설 이후 우리나라는 원전 기술을 축적하기에 이른다. 한전은 초창기 원전 건설로 자신감을 얻게 됐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구체적인 기술자립의 촉매역할을 한 것 같다. 한전이 사업추진 방식을 일괄발주방식에서 벗어나 분할발주방식으로 변경한 것이 단적인 예다.

1980년대 한전은 사업관리를 주도하고 종합설계용역과 원자로설비 공급, 터빈·발전기 공급, 원전연료 공급, 시공 등을 분야별로 세분화해 전문업체와 계약했다. 완전한 의존에서 원전 건설을 주도해 보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원전 관계자는 “이 시기에 국산화가 불가능한 품목과 분야를 제외한 모든 기자재를 우리나라 제조업체에 맡겼고, 시공도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이 전담하게 하는 등 지금 우리가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됐다”고 회고했다.

기술축적 단계에 건설된 원전은 고리원전 3·4호기와 영광원전 1·2호기, 울진원전 1·2호기 등 총 6기. 이들 원전의 발전설비용량은 100만kW급으로 원전대형화에 성공했다. 이 대형화는 기술축적이란 장기계획 외에도 경제 규모의 급속한 확대에 따른 전력수요 충당을 위한 조치였다.

울진원전 1·2호기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원전기술과 원전연료의 공급원 다원화, 정치·경제기술협력의 증진 등을 고려해 건설된 것. 특히 그 동안 추진되던 방식과 달리 보조건물을 2기가 공유할 수 있도록 건설돼 경제성을 최대한 살렸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지금의 원전 형태를 갖췄다는 평가다. 당시 총 공사비는 2조1200억원. 이 중 우리나라 업체가 설계·기기제작·시공 등 공사 전반에 참여해 설계는 6%, 기기공급분야는 40%까지 국산화율을 높였고, 시공분야는 완전한 기술자립을 이룩했다.


영광원전 3·4호기에 기술 집합
자체 브랜드 ‘OPR1000’로 결실


우리나라 원전건설 기술은 영광원전 3·4호기에서 결정체를 이룬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1987년 4월 설계와 주기기 공급계약을 체결했으며 순수 우리나라 기술진에 의해 건설된 한국 원전건설 기술의 집합체로 평가받고 있다.

원전산업 20년 만에 자체 브랜드를 개발한다. 세계는 깜짝 놀랐다. 기술과 자본을 전량 해외에 의존한 상태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원전산업이 ‘Made in korea’라는 마크를 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 브랜드가 바로 OPR1000(Opimized Power Reactor 1000). 신규 원전 도입국가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 브랜드는 지난 1984년 정부의 ‘원전 기술자립 촉진대책’에 의거 ABB-CE사의 System80노형을 기준 모델로 축적된 우리나라 원전기술과 국내외 최신 설계기준을 적용했고, 표준화된 고유 설계개선 사항 100여 개를 반영해 원전이 토종으로 불릴만한 브랜드다.

30주년을 맞은 우리나라 원전산업, 원전기술 완전 자립을 선언했다. 최근 두산중공업은 선진국에서 보유하고 있던 원전 핵심기술인 MMIS(Man Machine Interface System, 원전계측제어시스템)기술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기술은 원자력발전소의 상태감시·제어·보호 등을 담당하는 두뇌와 신경조직에 해당하는 것으로 우리나라가 원전 기술의 완전 자립을 위한 마지막 과제로 여겨졌다. 특히 원전 종주국인 미국·프랑스·캐나다 등 원전 선진국에서만 보유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원전기술을 인정받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원전산업은 세계 시장을 내다보고 있다. 터키와 루마니아 원전 건설에 집중하고 있다. 다음 호에서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기후변화대응에서의 원전, 미래 핵심산업의 원전 등에 대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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