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 시장·민영화…전력노조 이미 실패한 정책
전력산업 시장·민영화…전력노조 이미 실패한 정책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22.08.0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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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판매독점구조 깨는 건 민간·재벌 속내 드러내는 것 일축
美 텍사스 대정전과 英·日 전기요금 폭등 참혹한 결과로 나와
연료비 급등 따른 에너지 위기 속에서 소매사업자 폐업 이어져
공공성 파괴된다면 그 피해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 우려
한전 강릉지사에 걸린 전력노조의 전력산업 민영화 반대 플랜카드.
한전 강릉지사에 걸린 전력노조의 전력산업 민영화 반대 플랜카드.

【에너지타임즈】 정부가 한전의 독점 판매구조를 깨겠다는 정책에 반발해 최근 투쟁을 공식화한 전력노조가 전력산업의 시장화와 민영화는 세계적으로 이미 실패한 정책이란 새로운 논리를 가져왔다. 에너지 위기 속에서 전력산업 시장화와 민영화에 따른 피해가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일 전국전력노동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신정부가 한전의 독점 판매구조를 깨고 경쟁과 시장원칙으로 민간 참여를 확대하겠다는 새 정부 에너지 정책을 의결한 것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전력산업 독점구조를 해소하는 한편 소매 부문 경쟁 도입으로 전력시장 역동성을 살려야 할 것이란 발표에 민간과 재벌의 전력시장 진출을 위한 속내를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발표된 성명서는 전력노조가 지난 7월 15일 제178차 중앙위원회를 열어 전력산업 민영화와 공공기관 구조조정 저지 투쟁계획을 의결한 후 처음으로 발표된 메시지다.

그러면서 전력노조는 전력산업의 시장화와 민영화는 세계적으로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고 주장하면서 2021년 미국 텍사스 대정전 사태는 물론 영국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전기요금 폭등과 전력 공급 중단이란 참혹한 결과를 낳고 있음을 소개했다.

특히 전력노조는 프랑스 EDF가 연료비 폭등에 따른 전력시장 안정화와 에너지 안보를 위해 전력산업을 전면 재국유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음을 근거로 제시했다.

엘리자베트 보른(Elisabeth Borne) 프랑스 총리는 지난달 6일 취임 후 가진 첫 의회 연설에서 EDF 국영화 계획이 프랑스 에너지 독립을 보장하고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보른 총리는 “프랑스는 자국 전력의 70%를 원전으로 충당하는 등 원전 의존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더는 러시아 석유·천연가스에 의존하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프랑스는 현재 84%인 EDF 정부 지분을 100%로 올려 에너지 주권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경제에 직접 개입하는 오랜 전통을 가진 프랑스는 1980년대 이후 국영기업 대부분을 민영화한 바 있다.

프랑스 정부가 EDF를 완전한 국영기업으로 전환하려는 배경엔 노후 원전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프랑스 내 원전 대부분은 1980년대에 지어졌다. 이들 원전에 대한 제대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잦은 고장이 발생하며 얼마 전부터 원전 절반가량이 폐쇄되는 등 전력생산량이 최근 30년 사이 최저로 떨어지면서 원전 관리에 문제가 되고 있다. 적기 투자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인 셈이다.

이와 함께 전력노조는 연료비가 급증하면서 닥친 위기 속에서 전력소매시장을 개방한 국가들의 소매사업자들이 폐업하는 등의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전력시장 모델인 영국 전력시장에서도 소매사업자가 파산하는 사례가 에너지 위기와 함께 불거지고 있다.

한전 경영연구원이 지난 5일 영국의 경영컨설팅 기업인 옥세라(OXERA)가 발표한 보고서인 ‘오프젬(ofgem) 에너지 시장 규제 검토(Review of Ofgem's regulation of the energy supply market)’를 바탕으로 ‘영국 전기·가스 소매사업자 파산 동향’이란 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 오프젬은 영국의 에너지 규제기관이다.

지난해 하반기 전기·가스 도매가격이 급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해 2018년 제정된 전기·가스 소매요금 상한제도인 소비자보호정책(Default Tariff Cap)으로 가격 상승에 제동이 걸리면서 올해 1/4분기까지 모두 30개에 달하는 전기·가스 소매사업자가 파산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사업자 파산에도 불구하고 기존 소비자는 전기와 가스의 공급을 보장받을 수 있으나 파산으로 인한 소비자 이관에 필요한 비용은 미래 소비자와 납세자에게 전가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와 전력시장 환경이 유사한 일본에서도 폐해가 속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일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한 세계 에너지 시장 인사이트(World Energy Market Insight)에 따르면 2022년 3월 말 기준 신전력사업자는 752곳이며, 2022년 6월 8일 기준으로 신전력사업자 104곳이 파산·폐업·철수·계약정지 등을 발표한 바 있다.

이중 계약정지를 실시한 신전력사업자는 69곳으로 지난 3월 말 14곳에서 5배가량 증가했다. 또 전력사업에서 철수한 신전력사업자는 16곳으로 지난 3월 말 3곳에서 5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노유근 전력노조 대외협력국장은 “전력산업은 국가 혈맥을 담당하는 기간산업이자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산업으로 공적영역 내에서 발전되고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재벌과 민간자본에 의해 전력산업이 이윤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면 전력산업 공공성은 파괴되어 그 피해가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어 그는 “국내 전력시장에 진출하려는 해외 자본에 전력산업이 넘어간다면 에너지 자립 기반이 전혀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에너지 주권까지도 침해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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