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구를 위하여 에너지정책은 울리나?
-중앙대 김정인 교수-
<칼럼> 누구를 위하여 에너지정책은 울리나?
-중앙대 김정인 교수-
  • 에너지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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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5.0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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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아침에 신문을 펼치기가 겁이 난다. 연일 석유가격은 치솟고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당분간은 어려워 질것이라는 어두운 경제전망의 기사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의 티베트 문제로 인한 북경올림픽의 반대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항상 어수선한 국내외 사회가 언제쯤 평화롭고 안정이 될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에게 자연이 곁에 있다는 점이다. 이미 봄이 온 후에 만물이 소생한 지 오래되었고 아름다운 꽃이 있어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행복도 잠시일 뿐이다. 생각해보니 세계는 기후변화로 인해서 생태계가 변화되고 기상 재난이 빈번이 일어나서 막대한 경제적, 인명적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또 다시 좌절감을 갖게 된다. 그래도 누군가가 말했듯이 “이 세상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각오처럼 우리는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미래는 더욱 좋아질 것이라는 확실을 갖고 말이다.

무릇 일에도 순서가 있다고 하였다. 당장 중요한 것부터 해결하자면 한국 경제에게 있어서는 고유가 에너지 문제라고 본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 정부가 고유가에 대한 에너지 절약 정책을 발표하였다. 에너지 절약이나 효율 대책에 있어서 산업부분은 지금까지 그래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건물이나 수송 부분은 상대적으로 노력이 적었다. 특히 시민들의 에너지 절약 정신은 시간이 가면서 점차 없어지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시민들의 에너지 절약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정부는 공공 기관에게만 적용되던 건물의 냉난방 온도를 병원이나 양로원 같은 특수건물을 제외하고 모든 건물을 대상으로 여름에는 26℃ 이상, 겨울에는 20도 이하로 제한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우선 올해는 준비기간을 두고 내년부터는 온도 규제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물리겠다다는 정책이다. 또한 공공 기관이 건설한 공동 주택의 에너지 효율 등급도 3등급에서 2등급으로 상향 조정된다. 승용차 요일제를 경기도와 대구로 확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대목이 있다. 흔히 정책의 집행을 고려할 때는 항상 정책의 현실 적용 가능성, 정책의 효과성 등을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헌데 이번에 내놓은 에너지 절약 정책 중에 건물에 대한 정책은 현실성이 너무도 동 떨어진다고 본다. 만약 시행한다 할지라도 건물의 온도의 측정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자동온도 조절기를 달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직접 방문을 하여 측정하겠다는 것인가. 만약 모든 전자 제품이나 건물내 기계에 자동온도 조절기를 단다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또 직접 방문하여 측정을 한다면 아마도 엄청난 수의 공무원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이것은 현실성을 너무도 도외시한 ‘일방적 정책’이다.

의도는 좋았지만, 달성하는 수단이 정책의 효과성이나 실효성에는 많은 부족감이 있다. 과연 정책의 대상이 시민들이라고 하면 시민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정책)을 개발하여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정책은 단순하고 쉬어야 성공할 수 있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을 위해서 시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눈높이 정책이 있어야 한다. 시민들은 정책이 복잡하거나 까다로우면 참여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정책이 위에서 언급한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하는지 다시 한 번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은 지금의 에너지 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를 반문해야 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옛날의 영화를 떠올린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영화로 헤밍웨이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다. 영화에서 는 스페인 내란에 참전한 미국인 대학 교수 로버트 조던이 철교 폭파 임무 성공 한후에 적의 반격을 받고 사랑하게 된 여인을 떠나라고 한 후 자기는 장렬하게 죽는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여기에서 영화의 제목이 ‘누구를 위하여 종는 울리나?“ 인데대상은 명백하다. 사랑하는 조국과 사람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뚜렷한 목표를 가지를 말할 수 있다. 누구를 위하여 에너지 정책을 하는가? 시민들인가? 아니면 정책 입안자인가? 이번에는 정책 입안자를 위한 종소리 인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이다. 자연이 옆에 있다는 것을 위로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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