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이 땅에 희망의 빛이 밝았다
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이 땅에 희망의 빛이 밝았다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09.04.2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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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계획과 맞물려 원전 급부상…오일쇼크 속 원전 1호기 탄생
30년만에 한국표준형원전 개발에 이어 녹색성장 핵심동력으로 부상
세계 제2차 대전 직후 유럽의 전력계통복구를 주도했던 미국의 워커시슬러(W.L.Cisler)가 1956년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이승만 前 대통령에게 원자력의 무한한 발전가능성과 전력사업 전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의 만남, 우리나라가 원전 대국으로 가는 첫 걸음이 됐다.

광복 이후 한반도는 남북한의 이념갈등으로 술렁거렸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북한은 정치적인 이유로 1948년 5월 14일 정오를 기해 단전을 감행했다. 당시 북한에 전적으로 의지했던 남한의 전력산업은 그야말로 불모지였다. 한국전쟁이 반발되자 그나마 보유했던 전력설비도 모두 소실됐다. 남한은 모든 것이 어두웠다.

한국전쟁 이후 무질서와 빈곤이 혼재된 이 작은 나라에 원전이라는 희망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원자력의 무한한 가능성을 꿰뚫어보고 원전을 도입키로 결정했다. 어두운 이 나라에 한줄기 희망의 빛이 피어올랐다.

지난 1956년 우리나라는 미국과 원자력협력협정을 맺었다. 이후 3월 문교부 기술교육국에 원자력과가 신설되면서 원전 기술개발과 산업화를 위한 모든 준비가 마무리됐고 1958년 3월 우리나라 최초로 원자력법이 공포됐다. 그리고 원전 반세기의 긴 역사가 시작됐다.

지금부터 정확히 반세기 전인 1959년. 정부 부처인 원자력원(現 교육과학기술부)과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연구기관인 원자력연구소(現 한국원자력연구원)가 설립되면서 원전 대국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1959년 7월 14일. 원전 불모지인 대한민국에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인 ‘TRIGA Mark-Ⅱ’
건설이 시작됐다. 이날 기공식에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정도로 중요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를 기준으로 대한민국 원자력 기술개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원자력시대에 접어들었고 과학기술의 커다란 전환점을 이룩하게 됐습니다.” -박정희 前 대통령, 1978년 7월 고리원전 1호기 준공식에서-

원전산업의 청사진이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1960년대. 박정희 前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추진되면서 전력수요는 급증했다. 당시 부족한 에너지자원 확보는 우리나라가 풀어야한 숙제도 대두됐다.

지난 1962년 정부는 ‘원자력발전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미래 에너지원으로 원자력이 가장 유망하고 원자력 기술개발을 위한 인력양성 착수, 1970년대 초기 원전 건설 등의 내용이 담긴 우리나라의 최초의 ‘원자력발전 추진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이 수립되면서 우리나라 최초 원전 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1964년 기초조사가 시작됐고 4년 만에 정부는 기상·지질 등 다양한 기초조사를 마무리짓고 최종 원전 후보지로 경남 양산시 고리를 선정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원전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고도의 경제성장과 맞물려 전력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1973년과 1978년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는 대한민국의 원전산업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결정적인 촉매역할을 했다.

1971년 3월 19일. 우리나라 상업용 원전 건설이란 서막이 열렸다. 총 1560억7300만원이란 거금을 투자해 58만7000kW 규모의 고리원전 1호기의 공사가 시작됐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관심은 고리고 향했고 이날 지역주민 1만여명이 참석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1978년 4월 29일. 세계에서 21번재, 동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2번째,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용 원전인 고리원전 1호기가 첫 불꽃을 지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감격의 순간에도 정부는 원전 기술의 국산화와 기술축적이라는 난제에 봉착했다. 정부는 해법으로 고리원전 3·4호기의 발주방식을 바꿨다. 그 동안 외국 계약자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던 ‘턴키형 발주방식’을 ‘분할발주 방식’으로 변경했다. 현재 우리나라가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원전기술을 보유할 수 있게 된 시발점이다. 이후 영광원전 1·2호기가 ‘사업자 주도형 공급방식’을 채택함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원전건설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는 이때부터 원전 건설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우리는 원자력발전의 요람을 이룩했고 이러한 대규모 설비는 국력신장을 이끄는 견인차이며 공업한국의 알찬 표상이다.” -전두환 前 대통령, 1983년 9월 고리원전 2호기 준공식에서-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정부는 원전 설계와 기자재 국산화에 집중하게 된다. 국산화율 95% 달성이란 목표를 세울 정도로 정부는 이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에 표준형원전건설을 원전건설사업 장기 추진방향이 설정됐다.

고리원전 3·4호기에 대해 역사는 1조7178억원이 투입되고 연인원 1200만명이 동원된 국내 건설사상 최대 규모로 원전 기술자립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울진원전 1·2호기는 미국의 원전기술에서 벗어나 프랑스의 선진 원전기술을 도입해 대한민국의 원전 표준화로 가는 길을 열었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원전 건설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핵연료의 국산화도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본격적인 기술개발에 나섰다. 지난 1976년 12월 설립된 한국핵연료개발공단(現 한전원자력연료주식회사)과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핵연료 국산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985년 핵연료 양산기술개발에 성공, 1987년 7월 월성원전에 핵연료 공급을 시작해 핵연료 국산화의 꿈을 달성했다.

1990년대 우리나라는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키 위해 원전건설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 정책에 발맞춰 지난 1984년 원전기술 자립계획에 의거해 축적한 우리나라 원전기술과 최신 설계기준을 적용해 대한민국 실정에 맞고 안전성을 보다 향상시킨 최적의 원자로인 ‘KSNP(Kore Standard Nuclear Power Plant, 한국표준형원전)’ 개발이 추진된다.

한국표준형원전의 효시는 지난 1995년 준공된 영광원전 3·4호기. 이 발전소는 기술자립을 비롯해 외자의존도를 17%까지 낮추는 성과도 거뒀다. 울진원전 3·4호기는 원전의 두뇌로 불리는 원자로계통을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하는 쾌거도 일궈냈다.

우리나라의 원전 수출의 꿈은 울진원전 3·4호기가 준공되면서 가시화됐다. 우리나라 업체 주도로 한국표준형원전이 건설됐기 때문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 1993년 한전 기술본부 내 별도의 해외사업추진팀이 발족됐고 중국 진산 중수로건설사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해외사업에 착수했다.


“앞으로 방폐장 선정과 같은 성공사례들이 더 많이 나오고 대화와 타협이 사회의 보편적 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노무현 前 대통령, 2007년 11월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 착공식에서-

우리나라 원전 누계발전량 1조kWh 달성이라는 눈부신 성과로 시작한 2000년대.

울진원전 5·6호기가 준공되면서 우리나라는 20기의 원전을 보유한 세계 6위의 원전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개선형한국표준원전인 OPR1000이 신고리원전 1·2호기에 적용됐고 이 브랜드는 세계 원전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하게 됐다.

2007년 개념설계를 완료한 일체형 원자로인 ‘스마트(SMART)’는 핵분열로 생기는 열의 일부를 전기로 만들고 나머지는 바닷물을 정제해 민물로 만드는데 필요한 열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중소형 원자로로 인구 10만명 규모의 도시에 전기와 물을 동시에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지난 2005년 설치된 ‘아틀라스(ATLAS)’는 우리나라 원전시설의 안정성 확보에 큰 이정표가 됐다. 아틀라스는 원전에서 발생 가능한 대부분의 사고에 대해 실제와 유사하게 모의실험을 할 수 있는 장치로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성과가 나오고 있음에도 풀어야 할 문제는 있었다. 바로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관리와 처분. 그 동안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 후보지 선정은 주역주민들의 반발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던 중 지난 2005년 정부는 주민투표제를 도입했고 같은 해 11월 최종 후보지로 경주시가 선정됐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비전의 축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녹색성장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건국60주년기념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원전은 녹색성장의 핵으로 부상한다.

지난 2008년 8월 수립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화석에너지의 비중을 낮추는 대신 오는 2030년까지 원자력 등 저탄소 에너지의 비중을 전체 에너지원의 39%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의 계획이 발표됐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이 거의 없으면서도 발전단가가 낮아 경제성 높고 고유가시대와 국제적인 환경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에너지로 원전을 손꼽았다. 이에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원전 비중을 전체 59%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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