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바람 잡는 아름다운 사람들…백령도 이야기
황소바람 잡는 아름다운 사람들…백령도 이야기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17.01.02 23: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장르포-저소득층 에너지효율개선사업>
가구당 고작 150만원으로 따뜻한 겨울나기 도와
물류·추가비용 등 바로 시공사 몫…어려움 호소
【백령도=에너지타임즈 김진철 기자】우리 주변에는 겨울나기를 두려워하는 이웃들이 많다. 도심에도 많지만 도서지역이나 산간벽지 등으로 가면 더욱 심하다. 그런데 이들의 겨울나기를 돕는데 편성된 정부예산은 고작 500억 원을 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수혜대상에게 돌아가는 예산은 평균 150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혜대상은 많은데 반해 예산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불거지고 있다. 그래서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질타는 예산집행에 따른 실효성과 사후관리다.

저소득층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은 에너지빈곤층을 대상으로 에너지공급기반을 마련해 주는 동시에 에너지구입비용을 줄여주자는 취지에서 2007년 출발했다.

단열공사는 벽 등으로 필요한 열이 유출되거나 불필요한 열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해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한 공간을 제공하는 공사다. 창호공사는 허술한 창문과 현관출입문 등을 PVC창호와 ABS도어로 교체함으로써 근본적으로 공기의 유·출입을 차단하는 공사다.

이뿐만 아니라 에너지효율 대비 에너지가격이 높은 전기용 난방기기의 사용을 줄이고 1차 에너지를 이용한 난방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배관설치공사와 고효율 가스·기름·연탄보일러를 설치해 주는 공사도 이 사업에 포함돼 있다.

이 사업은 물고기를 잡아주는 에너지복지와 달리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에너지복지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에너지재단에 따르면 저소득층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은 매년 전국의 저소득층 3만 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지난해까지 모두 30만 가구가 혜택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이 진행되는 현장 곳곳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다. 턱 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힘겹게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현장을 지난달 우리나라 최북단 섬인 백령도에서 스케치했다.



서해안 파도가 3~4미터로 높아 기상이 좋지 않았던 지난달 5일. 08시 30분 인천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한 여객선은 4시간 뒤 백령도에 도착했다. 반은 주민, 반은 일반인이 이 여객선에서 내렸다. 백령도 인구는 대력 1만2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중 절반은 군인이다.

특히 백령도 물가는 물류비용을 포함하고 있는 탓에 육지에 견줘 상대적으로 높다. 그렇다보니 건물을 짓더라도 자재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건설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건물이나 집의 시설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게 현실이다.

지난해 백령도에서 추진된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은 모두 17건. 17곳 가구만 이 혜택을 받았다.

한명진 백령종합사회복지관 부장은 “백령도 내 거주하는 주민의 20% 이상이 65세가 넘는 노인층”이라면서 “겨울이면 강풍 등으로 인해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면서 충분하지 못한 예산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어 한 부장은 “(에너지효율개선사업) 대상에 무허가건물이 포함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라면서 “실제로 무허가건물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더 필요한데 도와줄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현장고충을 털어놨다.

사업을 담당하는 시공사는 웰하우징. 이 회사는 사회적 기업으로 2007년 첫 사업부터 참여하고 있다.
윤대성 웰하우징 대표이사는 “백령종합사회복지관의 도움이 없다면 공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도움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왜냐하면 군사지역인 탓에 네비게이션에 도로표시는 물론 건물표시 등 아무런 표시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수혜가구를 찾아가는 것이 시공사 입장에서 곤욕 중 하나다. 전담 사회복지사가 일일이 쫓아다니는 수고를 보태야 한다.

첫 번째로 방문한 수혜가구에는 육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중년부부다. 남편이 암 투병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단열시공과 창호·보일러교체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 집의 벽체는 중간에 텅 비어있는 블록벽돌로 지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온도와 내부온도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또 창틀 등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은 난방을 하더라도 난방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현재 에너지재단 규정상 외벽만 단열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돼 있으나 시공사 작업자가 조금 더 단열시공을 하면 단열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시공사는 추가 시공을 결정했다고 한다.

윤 대표이사는 “현장에서 직접 공사하는 작업자가 단열자재를 추가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사업이다 보니 이런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또 “현장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양재열 주택진단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주민에게 “날씨가 춥더라도 가끔 환기를 시켜야만 환자건강에 좋다”고 환기의 중요성을 거듭 당부했다. 또 “더 작업을 해 주고 싶지만 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에 주민은 연신 고마움을 뜻을 표시하면서도 친분이 있는 주민이 수혜대상에 포함됐는지를 물어봤다.
그러면서 그는 “괜히 우리 집 공사한다고 다른 어려운 집 도움을 받지 못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다음으로 방문한 수혜가구에 부자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노인은 지체장애인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단열시공과 함께 창호·보일러교체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낡은 집이라서 그런지 보일러실은 좁디좁았다. 작업자 1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에서 작업자가 보일러를 교체하는데 사투를 벌이는 모습은 못내 안타까웠다.

방문 당시 작업자는 기존의 낡은 보일러를 제거한 뒤 보일러배관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시커먼 녹물이 쏟아졌고, 이 작은 취재 내내 진행됐다. 보일러실이 협소하다보니 공동작업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작업시간은 갈수록 늘어났다.

작업자는 “보일러 교체할 때 (보일러)배관 청소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효율도 떨어지고 (보일러를) 교체한 보람도 없다”고 필요성을 어필했다. 그러면서 “보일러배관 청소에 별도의 비용이 들지만 나라에서 지원해 줄 리 없고 내 성격에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데 그냥 지나칠 수 있어야지”라며 하던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양 사무국장은 “저소득층,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대체적으로 작업환경이 열악하기 마련”이라고 설명하면서 “도심의 아파트나 빌라 등에서 이뤄지는 작업보다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 대부분”이라고 시공사의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단열작업 등 여타의 작업도 모두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표이사는 세 번째로 방문한 가구에 많은 신경을 썼다. 사연을 들어보니 이 집은 창고를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단열이 제대로 됐을 리가 없다는 뜻이다. 이 집의 주인은 홀로 사는 노인이다.

공사를 마친 뒤 3일 밤을 보낸 노인은 “공사(단열시공)를 하고 나니 전기장판을 안 켜도 살만하다”고 윤 대표이사의 손을 꼭 잡았다.

윤 대표이사는 단열시공을 하면서 에너지재단에서 제공하지 않는 자재가 아닌 직접 구매한 자재로 몰딩을 한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한참 환담을 나누는 동안 화장실을 다녀온 양 사무국장이 이번에 교체한 이중창호를 열고 들어오자 차디찬 찬바람이 들어왔고,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단열시공을 하지 않았다면 이 노인은 분명 혹독한 겨울나기를 해야 할 뻔 했다.

그리고 밤이 돌아왔다. 이날 밤은 숙소의 창문이 흔들릴 만큼 강풍이 불었다. 나름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숙소지만 황소바람이 거셌다.

그랬을까.

백령도 여객터미널에서 만난 윤 대표와 양 사무국장은 도서지역의 작업을 극도로 꺼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추가 비용 탓이다.

백령도 14가구에 대한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을 하는데 2.5톤 트럭 1대와 1톤 트럭 3대가 백령도에 들어왔다고 한다. 육지라면 물류비용이 별도로 들지 않겠지만 2.5톤 트럭 1대에 대한 물류비가 150만 원이라고 한다. 이 비용은 고스란히 시공사의 몫이다.

에너지재단 관계자는 “도서지역으로 가는 물류비에 대한 비용은 편정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날 강풍으로 백령도로 가져온 이중창호가 넘어져 유리가 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윤 대표이사는 “인천으로 창호를 가져나간 뒤 유리를 맞춰 다시 백령도로 가져와 시공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하면서 “공사기간도 크게 늘어나고 그에 따른 비용도 고스란히 시공사의 몫”이라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이뿐만 아니라 시공사들은 공사 후 전수조사과정에서 시공사에서 부담한 부분을 두고 설계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아야 할 때 힘들다고 한다. 이 전수조사도 시공사에서 십시일반으로 부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지난해 150곳에 달하는 시공사가 저소득층 에너지효율개선사업에 참여했고, 이중 절반가량이 자활센터나 사회적 기업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