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21세기 高麗葬(고려장) ‘희망퇴직제’
<기자의눈> 21세기 高麗葬(고려장) ‘희망퇴직제’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09.03.0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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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 늙고 병든 사람을 구덩이 속에 버려 두었다가 죽는 것을 기다려 장사를 냈다고 하는 속전(俗傳).

희망퇴직제도가 고려장과 무슨 상관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요즘 공공기관과 공기업 등에 불고 있는 희망퇴직제도를 보면 마치 고려장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명분상으로야 경영효율화라고 외치지만 대부분의 대상자가 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도 언급했듯이 청년들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 조직에 힘이 없어졌거나 영향력이 떨어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력을 감축하는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다. 물론 세계적인 금융위기도 한 몫하고 이에 따른 국내 경기 악화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퇴직을 몇 년 앞둔 한 관계자는 “그 동안 회사를 위해서 밤이고 낮이고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고 우리나라의 산업을 이끌어왔다는 칭찬도 받았었다”며 “그런데 요즘은 위에 사람 눈치보랴 아랫사람 눈치보랴 자리가 가시방석”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그는 “아직 막내는 대학교도 보내야 하는데”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이 방만경영을 배척하고 경영효율화를 위해 앞장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부모를 버리고 자식을 버리는 가장(家長)은 없을 것이다. 힘들수록 서로의 어깨를 다독거려가며 아픔을 나누는 것이 이 어려운 난관을 헤쳐 나가는 해법일수도 있다.

지난 1997년 IMF 당시 모두가 힘들었지만 일부 기업들은 기존의 틀을 깨고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해 성공한 기업도 있었다. 맹목적인 인력감축은 한쪽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한쪽 눈만 뜨면 반쪽 세상만 보일 뿐이다.

모든 것이 어렵다. 그 동안 가려졌던 반쪽 세상도 볼 수 있도록 두 눈을 떠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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