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기업 연구가 같다?…존폐위기 ‘기초전력연구원’
기초·기업 연구가 같다?…존폐위기 ‘기초전력연구원’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16.06.02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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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연구원으로 통합하는 방안 에너지 기능조정 검토 중
업계·학계, 기초·기업연구 간 벽 허무는 발상이라고 반발
법률검토 결과 기능조정 대상서 제외돼야 종합의견 내놔

【에너지타임즈】우리나라 전력산업 기초연구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기초전력연구원이 존폐위기에 놓였다. 일명 에너지기관 살생부로 불리는 기획재정부 기능조정 도마에 올랐기 때문인데 이유가 궁색하기 그지없다는 여론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박 대통령이 대학·출연연·기업이 역할에 맞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바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논의는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조금씩 거론되고 있다. 특히 기초전력연구원은 정부로부터 예산과 기능을 부여받지 않고 있는 탓에 기능조정에 포함될 수 없다는 법무법인의 종합의견도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2015년 12월 기획재정부가 에너지부문 기능조정에 돌입하면서부터다. 이에 따라 기초전력연구원의 기능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기초전력연구원을 한전의 기업연구소인 전력연구원으로 통합하는 방안이 도출됐다. 기획재정부 측은 기초전력연구원의 기능이 전력연구원과 중복하기 때문에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기초연구와 기업연구를 동일하게 본 결과다.

기초전력연구원은 1986년 전력부문 관련 전국의 공과대학에서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 당시 전력산업의 대표회사인 한전에 건의했고, 그 결과 한전의 80억 원 출연을 받아 1988년 설립됐다. 그리고 2007년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돼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논란은 기초전력연구원과 전력연구원이 통합될 수 있는 명분이 없다는 것. 설립목적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기초전력연구원은 전력산업부문의 이론·실험적인 성격의 기초연구를 담당하면서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력연구원은 한전의 기업부설연구소로 응용·개발·실용화 목적의 연구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기초전력연구원과 전력연구원의 역할을 동일하게 본 결과로 풀이된다.

대한전기학회도 기초연구지원기관인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전력부문에 대한 지원이 거의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초전력연구원의 전력부문 기초연구지원기능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고, 전력부문 기초연구의 전문연구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면서 기초전력연구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전력산업의 발전과 학계의 기초연구활성화 등을 위해선 기초전력연구원 등과 같은 전담기관이 계속 유지돼야 할 것이라면서 기획재정부 기능조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제1차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금처럼 대학·출연연·기업이 차별성 없는 연구를 할 것이 아니라 각자역할에 맞고 잘 할 수 있는 연구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대학에 기초연구와 인력양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대학의 연구자에게 단시간의 성과를 요구하기보다 꾸준히 한 우물 파기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기획재정부가 전력부문 기초연구를 기업연구에 통합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은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기초전력연구원은 현재까지 정부에서 부여한 기능·출연·보조 등 재정적인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왔다. 최근 한전과 3년 단위의 협약과 계약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다 단일 프로젝트를 수주함으로써 기초전력연구원은 운영되고 있다. 정부의 예산을 전혀 받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번 논란과 함께 전력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기초연구는 당장 성과를 낼 수 없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지원이 없었다는 사실은 새롭다”면서 “기초연구는 우리나라 전력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초석이라면서 기능조정 대상에 포함됐다면 되레 예산을 지원하는 등 기능을 강화시키는 측면에서의 기능조정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1일 본지에서 입수한 전력연구원으로 기초전력연구원이 통합되는 기획재정부의 기능조정 관련 법률법인 자문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운영위원회는 해당기관의 업무특성 등을 감안해 기능조정의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시행령에 명시돼 있는 만큼 법무법인은 이 조항에 포함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보고서는 기타공공기관 지정 전후로 기초전력연구원의 기능과 역할이 크게 변함이 없는데다 정부의 직·간접적인 예산이 없고, 정부사무의 위임·위탁이 전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특히 법무법인은 설립 당시 한전으로부터 80억 원을 출연 받았다는 이유로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됐고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신설되면서 일률적으로 편입된 측면이 있어 기능조정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종합적인 의견을 내놨다.

기초전력연구원 고위 관계자는 “기능조정의 핵심에 대해선 민간부문과의 경합업무를 없애고 기관별 핵심기능에 집중하는 것에 있다”고 언급한 뒤 “연구개발(R&D)은 경제성보다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문부문으로 연구원의 업무는 중복업무가 아니며 효율성과 민간부문의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어렵다”고 기초전력연구원을 전력연구원에 통합하는데 따른 시너지 효과가 없음을 주장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전력체계 구조상 한전 등 공기업이 주도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한 뒤 “한전으로부터 수탁 받은 과제가 많다는 사유로 단순 통합하는 것은 전력부문 그 동안의 역할분담체계에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논리라면 기초전력연구원뿐만 아니라 한전의 연구개발을 수주한 민간기업도 이번 기능조정에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전력연구원 측도 크게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물론 (기초전력연구원이 전력연구원으로 통합된다면) 굳이 말릴 이유는 없지만 효과는 극히 미미할 것”이라고 언급한 뒤 “그 동안 기초전력연구원은 한전의 기업연구소인 전력연구원과 기초연구를 전담하는 대학과의 가교역할을 해 왔고, (통합 후) 전력연구원은 전국의 대학과 접촉을 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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