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타임즈 김진철 취재팀장-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 일명 ‘공기업 때리기’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거나 국정감사 등 때가되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몰아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린다. 그래서 공기업은 늘 국민에게 ‘나쁜 놈’으로 낙인 찍혀 있다. 대한민국에서 공기업으로 살아가야 하는 숙명의 하나가 돼 버린 지 오래다. 대표적인 공기업이 석탄공사다. 사양화란 석탄산업의 특수성 탓에 효율이 갈수록 바닥으로 치고 있고, 인력감축에 따른 비용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석탄공사의 현 주소다.
1988년 석탄산업이 정점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오늘 날의 석탄공사가 될 것이란 상상을 누구도 감히 하지 않았다.
당시 오일쇼크 여파로 땔감과 연탄에만 의지하던 난방시장이 다양화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경제성장에 따른 국민소득 증대, 석탄원료비 상승, 청정에너지에 대한 열망 등도 한 몫 거들었다.
과거의 영광에서 쇄락의 길을 걷는 현재, 심각함은 관련 수치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1988년 347곳이던 탄광은 현재(2015년 12월 기준) 5곳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석탄생산량도 지난 1988년 2429만 톤에서 2012년 209만 톤, 근로자 수도 6만2259명에서 3808명으로 각각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줄어든 석탄수요 탓에 생산비용은 늘어나기 시작했고, 인력감축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석탄공사는 인력감축에 소요되는 퇴직충당금 등을 은행으로부터 차입했다. 은행으로부터의 차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은행으로부터 차입한 차입금에 대한 이자에 이자를 물면서 자연스럽게 차입금은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수익구조가 과거에 갇혀 있으니 진퇴양난(進退兩難)이 아닐 수 없다.
2000년대 초 석탄공사에 대한 청산이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당시 청산비용은 5000억 원 내외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은 몇 배로 늘어났을지 가늠조차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추가 차입금과 함께 이자에 이자를 무는 구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팔 수 있는 건 모두 팔았기 때문에 청산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어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금도 정부의 결정만 있다면 국책은행으로부터 저리융자를 받아 석탄공사를 청산하고, 정부가 앞으로 지원해야 할 지원금으로 원금과 이자를 충분히 갚아낼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다. 그는 그런 측면에서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쉽사리 석탄산업과 석탄공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유는 통일. 북한에 매장돼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채굴할 수 있는 산업이 뒷받침돼 있어야 하고 석탄공사에서 보유한 노하우와 기술이 유지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을 펴는 것은 마땅히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지만 대책이 없다는 것은 허점이다. 10년 뒤에 통일이 될지, 100년 뒤에 통일이 될지 누구도 진단할 수 없다. 그렇다보니 정책의 노선은 정해져 있으나 구체적인 계획은 빠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석탄공사에 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 자금은 기껏해야 연탄수급을 안정화시키고 석탄공사가 차입한 차입금에 대한 이자를 부담하는 정도로만 활용된다. 그 결과 공적자금은 밑 빠진 가마에 물 붓기로 낭비되고 만다. 기약 없는 통일에 대한 기대만으로 세금이 낭비되어선 안 된다.
정부도 석탄산업과 석탄공사를 포기할 수 없다면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할 필요가 있다. 석탄산업과 석탄공사가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 정책이 핵심이 될 것이다.
유동헌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2년 자신의 보고서를 통해 국내 탄광이 산업의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이익될 것이라면 석탄공사가 기여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뒤 탄광 관련 근로자의 재교육이나 양성기능을 석탄공사에 부여한 뒤 새로운 기업목표를 부여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교육을 통한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석탄공사가 설립된 1950년부터 지금까지 65년 간 쌓아온 노하우와 기술력을 정부가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세계석탄시장은 환경이 좋은 탄광을 중심으로 이미 개발 중이거나 개발이 완료된 상태다. 그러면서 환경이 다소 열악한 탄광들이 헐값으로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이 시장은 석탄공사의 노하우와 기술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2010년 석탄공사는 위기돌파의 일환으로 설립 60년 만에 첫 해외사업에 도전했다. 석탄의 질이나 석탄매장량 등이 우수하고 사업의 확장성까지 갖춘 탄광으로 평가받고 있는 몽골 누르스트 훗고르탄광의 지분 51%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해외탄광개발에 나섰다.
다만 몽골의 열악한 인프라는 이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게다가 2014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국제유가 급락은 국제석탄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이 탄광도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프로젝트는 표면적으로 실패란 오명을 쓰고 있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 동안 무연탄을 생산하던 석탄공사가 발전연료인 유연탄을 생산했다는 것이다.
현재 발전사는 발전연료인 석탄을 현물시장에서 다소 고가로 공급받고 있다. 그렇지만 발전사가 탄광개발로 발전연료를 공급받는다면 저가란 메리트와 함께 안정적인 공급선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발전단가 중 발전연료가 차지하는 부분은 70% 내외다.
특히 발전사가 발전단가를 낮추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탄광개발에 나서지 못한 이유는 재원보다 탄광개발에 필요한 노하우와 기술력이었다. 알아야 이장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탄광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사업이 추진되면, 가뜩이나 위험성이 높은 탄광개발에 대한 실패확률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발전사가 원하는 노하우와 기술을 석탄공사가 갖고 있는 셈이다. 석탄공사는 최근 몽골사업에서 발전연료인 유연탄을 생산한 바 있다.
양측이 원하는 바가 확실해졌다. 석탄공사는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익구조를 필요로 하고 있고, 발전사는 보다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발전연료를 공급받는 경쟁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협력하는 구조다보니 이만큼 안정적인 사업도 없다.
이쯤에서 중요한 것은 석탄공사와 발전사의 대주주인 정부의 역할이다.
발전사는 입증된 시업이란 망설임 없이 추진할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 해외탄광개발 관련 이렇다 할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지 않다. 망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통해 새로운 사업에 대한 믿음을 사업자에게 심어줘야 한다.
먼저 현재 객관화되지 않은 석탄공사의 노하우와 기술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사업에 견줘 실패확률이 높은 탄광개발에 대한 실패확률을 줄일 수 있다. 또 이와 함께 정부는 이 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줄 수 있는 정책을 펼 필요도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는 석탄산업과 석탄공사의 노하우와 기술력이 필요하다면 이들에게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정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최근 석탄공사가 10년 안에 스스로 자멸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사업장의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는데다 인력감축으로 되레 인력부족현상이 발생하는 기이현상이 나타나면서 석탄공사가 스스로 청산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석탄공사 직원들이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적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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