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일 기초전력연구원 원장(서울대 교수)-
【에너지타임즈】 40년 만에 가장 심각하다고 하는 이번 가뭄으로 전국의 많은 강이나 저수지들이 맨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소양강 댐의 수위는 한 때 역대 최저 수위 가까이로 내려갔고 일부 지역에서는 제한 급수가 시행되어 식수 공급마저 중단되기도 하였다. 이런 가뭄을 극복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지하수 개발과 같은 상수원을 확보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심각한 환경훼손 또한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안은 물을 저장하는 설비를 늘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설사 몇 달씩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하여도 전국에 넉넉한 저수설비가 갖추어져 있다면 큰 어려움 없이 가뭄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전기는 물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 전기를 만들어내는 발전소를 상수원에 비긴다면 전기를 실어 나르는 송전선로나 배전선로는 수도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전기와 물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이제까지 전기는 저장을 하여 사용하는 기술을 널리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기치 못하게 전기의 사용량이 늘어나거나 발전기가 고장이 나서 갑자기 정지하게 된다면 부득이하게 정전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2011년 9월에 겪었던 단전사태가 바로 이런 연유로 발생한 일이다. 갑자기 늘어나는 전기 소비량에 맞게 발전기가 전기를 공급할 수 없게 되자 전기공급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게 되어 일어난 것이다. 만일 그때 전기를 저장하였다가 사용할 수 있는 설비를 적절한 양만큼 갖추고 있었더라면 단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저수지처럼 전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한 때에 꺼내어 쓸 수 있는 설비를 에너지저장장치(ESS)라고 부른다. 주로 배터리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전기의 여유가 있는 때에 충전을 하고 이를 긴요한 때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대체적으로 저녁시간에는 전기의 소비량이 적으므로 이때 충전을 하고 전기소비가 최고조에 오르는 낮 시간에 저장된 전기를 꺼내어 쓰게 한다면 ESS는 발전기를 대신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전기를 먼 곳으로부터 끌어와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 적절한 양의 ESS를 전국에 설치하고 효과적으로 운영한다면 발전소나 송전선로 건설 부담을 줄이면서도 정전없는 고품질의 전기를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공급되는 전기는 1초에 60번 극성이 바뀌는 교류전기이다. 발전기가 만들어내는 전기와 사용되는 전기가 정확히 일치할 때는 주파수가 60Hz로 유지되지만 소비량이 많을 때는 주파수가 떨어지고 발전량이 많을 때는 반대로 주파수가 올라간다. 이런 연유로 전국에 산재한 상당수의 화력발전기들은 만들어 낼 수 있는 전기보다 약 5%를 줄여 발전하면서 주파수가 60Hz로 유지되도록 하고 있다. 만약 이런 주파수조정 역할을 발전기 대신 ESS가 하도록 한다면 이 발전기들은 전기를 더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때마침 한국전력에서 주파수조정용 ESS를 2017년까지 500MW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계획이 이루어진다면 발전소 건설에 따른 환경파괴 없이도 대형 화력발전기 1대 분량의 전기를 더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 사업으로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서안성변전소에서 28MW 규모의 시범설비가 상업운전을 시작하였다. 우리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할 수 있는 배터리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융합시켜서 환경문제와 에너지문제를 풀어내는 기술이 바로 ESS기술이다.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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