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유통구조 개선정책 '약일까 독일까'
석유유통구조 개선정책 '약일까 독일까'
  • 윤병효 기자
  • ybh15@energytimes.kr
  • 승인 2008.12.3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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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기다려야 주유 가능한 무폴주유소 탄생… 주유가 하락 이끌어
마트주유소 1호점, 130원 싸게 공급 개시… 주변 주유소는 ‘울상’
수평거래허용·석유선물시장 개설, 허점 지닌 채 올해부터 시행될 듯


정부는 석유가격의 공개를 통해 경쟁을 촉진시켜 가격 인하를 유도하고 유통시장의 공정거래를 확립하겠다는 취지로 지난해 4월부터 석유유통구조 개선방안을 추진해 오고 있다.

정부의 당초 계획대로라면 준비한 법안이 모두 시행되고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현재 상표표시제 폐지, 주유소와 정유소 공급가격 공개, 유류구매카드 활성화, 수출입업자의 저장시설 등록여건 완화 등은 시행되고 있지만 동종 판매업간 거래 허용, 석유선물시장 개설, 한국석유관리원 신설 등은 2008년 12월말 현재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올해 3월 이후에나 시행이 가능할 전망이다. 또한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개선방안으로 주유소 가격이 하락해 서민들에게 이득을 주는 이점도 있지만 법안의 허점이 많아 자칫 유통구조의 개선이 아닌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례1.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에서 24시간 영업하고 있는 A무폴(정유사 상표가 없는)주유소는 20여분을 기다려야만 주유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항상 붐빈다.

영등포구는 물론 전국에서도 가장 싼 편에 속하는 기름값을 받기 때문에 강남의 영업소 차량까지 여기를 찾아온다. 지난달 22일 주유소종합정보시스템인 오피넷(www.opinet.co.kr)에 따르면 이 주유소의 경유가격은 1199원으로 영등포구에서 가장 비싼 곳(1491원)보다 292원이 쌌으며, 휘발유는 317원이나 쌌다.

주유소 종업원은 “하루 평균 3000여대의 차가 온다”며 “이곳의 새벽 1시~4시까지의 매출이 다른 일반 주유소의 하루 매출과 맞먹을 정도”라고 말했다.

사례2.
지난달 22일 경기도 용인의 신세계 이마트 구성점에서 국내 첫 마트주유소가 탄생했다. 자가 주유(셀프) 방식으로 운영되는 이 주유소는 주변 주유소보다 휘발유가격이 최대 130원 싸게 공급했다.

이마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오전 10시부터 밤12시까지 주유소를 찾은 차량은 총 566대이며 판매량은 2만400리터였다. 인근 4개 주유소 가운데 한 주유소의 사장은 “이마트 주유소가 문을 연 첫날부터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앞으로 더 줄 것으로 예상돼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주유소협회를 통해 대책을 마련해 볼 계획이지만 사실상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걱정했다.
  

▲기대 반 우려 반, 상표표시제(폴사인) 폐지
지난해 9월 1일 폴사인제가 폐지된 이후 무폴주유소가 하나 둘씩 생겨나면서 저가 경쟁이 시작되는 양상이다. 

앞에서 언급한 A무폴주유소는 줄곧 영등포구에서 가장 싼 주유소로 오피넷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최근 인근의 B주유소가 더 싼 공급가를 들고 나타났다.

B주유소는 A주유소보다 경유가는 같지만 휘발유가를 10원 더 싸게 공급하고 있다. A보다 더 싼 주유소라는 인식을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침체로 서민들이 ‘더 싼’ 기름을 원하면서 주유소 간의 저가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가 상표표시제 폐지를 통해 의도한 또 하나의 목적이 ‘마트주유소’다. 정부는 당초 대형마트의 주유소사업 개시를 통해 주변 주유소와의 경쟁으로 소매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한편 정유사 외에 석유수입사 등 마트에 공급할 대형업체를 활성화시켜 유가 하락을 유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마트는 SK에너지와 공급계약을 맺었고 곧 마트주유소 사업에 뛰어들 홈플러스는 GS칼텍스와, 롯데마트는 S-OIL과 계약을 맺을 것으로 보이면서 결국엔 주유소사업마저 대기업에 넘어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주유소협회는 마트주유소 설립에 강력히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정유사와 공급계약을 맺은 마트주유소의 가격 경쟁력을 일반 주유소들은 따라 갈 수 없어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마트주유소는 결국 주유소업자 뿐만 아니라 인근의 영세업자들을 몰락시켜 지역경제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유소협회는 지난 8월 이마트에 공급을 결정한 SK에너지의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인데 이어 이마트 주유소가 들어설 군산과 순천에서 반대 항의시위를 계속했다.

▲허점 많은 수평거래 허용, 이대로?
석유제품을 판매하는 주유소와 주유소, 대리점과 대리점, 판매소와 판매소 간의 거래를 허용하는 수평거래 허용은 유통단계의 경쟁을 촉진시켜 물류 효율화를 이룬다는 정부의 취지로 발의됐다.

당초 지난해 11월부터 시행할 계획이었지만 12월말 현재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 유통업계나 정유사 측은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법안의 허점이 많다며 자칫 석유제품의 품질저하와 편법 거래를 통한 탈세 등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며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존 유통단계에서는 소비자가 잘못된 기름을 주유 받았을 경우에 바로 책임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지만 수평거래가 허용된다면 한 곳이 잘못된 기름을 여러 곳으로 공급해도 다른 주유소들의 기름과 섞였을 것이므로 전혀 책임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석유제품은 세금비율이 높기 때문에 영수증 등의 조작을 통해 얼마든지 세금을 탈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정유사의 관계자도 “정부가 한국소비자원이나 신설될 한국석유관리원 등을 통해 품질을 보증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지식경제부의 담당자는 “입법예고 기간동안 업계의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며  한국석유품질관리원을 통해 문제가 없도록 충분히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석유선물시장 개설과 한국석유관리원 신설
석유제품의 선물거래를 통해 가격투명성을 높이고 가격하락을 유도한다는 취지로 추진되고 있는 석유선물거래 개설과 수평거래허용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석유유통질서의 혼란을 막기 위해 신설될 한국석유관리원 법안 역시 당초 정부의 계획과는 달리 국회 통과가 늦어지면서 빨라야 올해 3~4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유통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신설될 한국석유관리원은 현재 석유제품의 품질검사를 맡고 있는 한국석유품질관리원의 기존 조직에 유통관리 조직을 더하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여기에 관리 대상 사업장에 대해 감시할 수 있도록 법정관리단체 전환될 예정이다. 정부는 관련법안을 지난해 11월 국회에 발의했지만 심의 기관인 지식경제위원회에서 법안심사 소위로 재회부시켰다.

병합 심의되던 정유사의 판매가 공개 의무화 법안이 여야간의 공방 끝에 재회부됐기 때문이다. 이에 지경부 관계자는 “조직 재개편과 예산 안 등을 모두 준비해 둔 상태”라며 “법안만 통과되면 한국석유관리원으로의 전환을 곧바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석유선물시장 개설은 국내 석유소비량이 많고 가격의 변동폭이 심하다는 점에서 변동폭을 낮추고 나아가 가격인하 효과까지 보겠다는 정부의 의도 아래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선물시장은 투기자본의 유입이 심하다는 점에서 현재 발의된 법안보다 더 보완대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최철국 의원은 “미국 석유선물시장은 투기자본 유입으로 가격이 폭등하는 등 심각한 왜곡이 나타나고 있다”며 “미국보다 법과 제도가 취약한 우리나라는 투기자금의 놀이터가 될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석유선물의 현물과 현금결제를 위해선 석유및석유대체연료사업법의 대리점과 주유소만 석유제품을 취급할 수 있게 만든 조항을 수정하고 정유소의 판매가격의 공개가 이뤄져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관련 법안의 개정이 병행돼야 한다.

지식경제부는 현재 금융위원회, 증권선물거래소, 민간전문가와 함께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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