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 기술기준에 따르면 경주방폐장 요건은 장기간에 걸쳐 역사적으로 지진발생빈도·규모·진도가 낮고 또 이와 같이 예상되는 지역이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다소 애매모호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 환경운동연합은 경주방폐장 부지 내 활성단층 Z21·Z22·Z31·Z32-2 등이 다수 분포하고 있음을 2008년 안전성분석보고서와 자체적으로 입수한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80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1회 이상의 단층운동의 증거가 있는 단층으로 본 뒤 경주방폐장 내 활성단층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원자력환경공단은 경주방폐장 부지 내 소규모 단층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활성단층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고시에 의거 미국 연방법 ‘10CFR Part.100’을 준용토록 돼 있으며, 이를 준용할 경우 부지 내 단층은 활성단층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근거가 된 이 기준은 활성단층을 3만5000년 이내 1번, 50만 년 이내 2회 이상 움직인 단층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술기준에 따르면 이는 활성단층일 수 있으나 원자력안전위원회 고시에 따르면 활성단층이 아닐 수 있게 되는 등 애매한 기준이 논의 불씨가 된 셈이다.
최근 기록적인 폭우가 부산·경남지역에 쏟아지던 지난달 25일 15시 54분경 한수원은 고리원전 2호기 2차 계통(원자로 외부순환)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취수건물에 빗물이 차면서 원자로를 수동으로 정지시켰다. 빗물로 인한 원자로 가동중단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습적인 폭우로 문제가 된 이 취수건물은 고리원전 2호기의 경우 지하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수(바닷물)를 냉각수로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데 취수펌프가 핵심설비로 이 취수펌프가 취수건물 내 빗물에 잠길 경우 2차 계통 냉각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제남 의원은 시간당 130mm는 많은 강수량이지만 원전설비건물이 이 같은 강수량에 빗물이 유입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업자인 한수원 측은 100년 만에 찾아온 폭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인 반면 반대 측은 빗물에 원자로가 멈춘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연일 원전의 안전성에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데 보니 원전을 바라보는 국민의 신뢰도는 어떤 식으로든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연재해는 예고하지 않고 찾아온다. 일 년에도 몇 번씩 자연재해 등 관련 기록이 경신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준이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기준이 정립되는데 환경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기준이 이어지는 것은 분명 또 다른 사고를 방치하는 것과 진배없다.
안전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현재, 원전도 변화된 환경에 맞춰 기준이 재정립돼야 할 시점이다. 언제까지 원전사업자가 앵무새처럼 기준에 맞춰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했다는 변명을 들을 것인가. 그렇다면 이들이 정작 기준에 없는 설비를 보강했을 경우 낭비 등이 논란이 될 수 있다. 사업자가 이를 걱정할 이유는 없다. 이는 정부의 몫이다.
정부가 이 기준을 적절하게 수립하고 운영할 경우 원전사업자는 이에 맞춰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할 것이고,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패럴티를 부여하면 된다.
적어도 정부가 원전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불필요한 갈등은 없어져야 한다.
분명한 것은 원전 관련 기준을 정하고 운영하는 것은 원전사업자의 몫이 아니라 정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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