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원전의 심장 원자로 ‘시집가는 날’
[현장르포]원전의 심장 원자로 ‘시집가는 날’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14.04.2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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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두산重 장인들이 빚어낸 신한울원전 1호기 원자로 출하
애지중지 자식 다루듯 만든 예술작품…보낼 땐 부모 마음처럼 짠해
원전은 로켓과 함께 과학의 예술작품으로 통한다. 장인이 아니라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금남의 공간인 탓이다.

하나의 원전이 운영되기까지 많은 장인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그 중 원전을 구성하는 핵심설비는 두산중공업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인체로 비하자면 오장육부(五臟六腑)에 해당한다.

그 중 원자로는 심장에 해당한다. 쉽게 보면 단순하게 물을 데우는 보일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전의 수많은 배관이 이곳으로 연결된다. 게다가 원전의 1차 안전장치일 뿐만 아니라 원전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능물질을 외부로 배출되지 않게 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원자로는 주조뿐만 아니라 단순한 용접 하나까지 일일이 테스트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철저하게 거치게 된다. 두산중공업에서 작업하는 작업자가 예술가로 일컬어지는 이유다. 이들은 원자로를 출하할 때의 마음을 ‘시집을 보낸다’란 말로 표현한다. 3년간 애지중지 자식을 키우듯 만든 원자로를 보내는 애정표현을 이처럼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기자는 순수 토종기술로 지어지는 첫 원전인 신울진원전 1호기에 장착될 원자로 출고 현장을 스케치해보기로 했다. 몇 차례에 걸친 약속과 취소를 거쳐 출고를 하루 앞둔 지난 16일 창원공장에 도착했다. 출고조차 쉽지 않은 모양이다.



16일 17시 38분경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내 터빈공장 앞에 모인 선·후배 동료기자 앞으로 415톤에 육박하는 APR(Advanced Power Reactor)1400 원자로가 80개의 바퀴로 만들어진 멀티로드(Multi-Road)에 실려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원자로는 잠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내일(17일) 오전 이 길을 따라 사내부두로 옮겨져 경북 울진으로 이동하게 된다고 한다. APR1400 원자로가 이 공장에서 출고되는 것은 신고리원전 3·4호기에 이어 벌써 세 번째다.

이 자리에서 이영동 두산중공업 원자력BG 상무의 간단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이 상무는 “원자로는 핵분열반응을 일으켜 열을 발생시키는 원전의 가장 핵심설비”라면서 “높이가 12.1m, 외부직경이 5.9m에 달하고 철판 두께만도 최대 297mm에 이르는 설비”라고 설명했다. 또 “이 원자로는 신한울원전 1호기에 장착돼 오는 2017년 4월 상업운전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쯤에서 APR1400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APR1400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원전모델로 UAE원전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기존 한국표준형원전인 OPR1000에 견줘보면 발전설비용량은 100만kW에서 140만kW, 설계수명은 40년에서 60년으로 각각 늘었다. 이를 통해 발전원가를 최소 10%이상 줄일 수 있다. 또 내진설계 기준을 리히터 규모 7.0 이상으로 높아지기도 했다.

이 상무는 어려움이 없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APR1400 원자로를 제작하고 출하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로 이미 많은 노하우가 축적돼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면서 “다만 신고리원전 3·4호기 원자로를 제작하고 출하할 땐 처음이란 부담감과 함께 원자로 자체가 커짐에 따라 다소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 동안의 쌓아온 노하우로 극복했다”고 말했다.

출고를 앞둔 느낌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애지중지 키운 자식을 시집보내는 느낌”이라고 애잔한 마음을 표현했다.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에서 원자로를 제작했던 임직원 누구나 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상무는 원자로 제작의 까다로움을 설명했다.

그의 말을 빌자면 원자로는 단순히 용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정교하게 연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용접기술은 그야말로 핵심기술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용접기술이 적용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한다. 이곳 용접기술자는 자격증은 기본이고 다년간의 교육과 다년간의 경험을 갖춘 명실공이 최고의 전문가다.

용접기술자 관리에 쉽지 않을 것이란 기자의 질문에 이 상무는 “어디 가서라도 그 기술이라면 풍요롭게 먹고 살겠지만 그들은 이를 예술로 보고 있고, 이들이 떠나지 않도록 묶어 두는 두산중공업의 뭔가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되레 반문하기도 했다.

사실 원자로를 제작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까다롭다고 한다. 이들이 용접기술을 예술이라고 하는 이유는 용접과정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기방울 하나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이들이다.

이뿐만 아니라 용접기술자가 용접하면 반드시 검사를 거쳐야 하고, 검사과정에서 이를 다시 보강하는 절차가 이어지는 등 모르는 사람이 보면 쇳덩어리로 보이겠으나 원자로 하나를 만들어 내는데 3년이란 시간이 그래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상무는 “원자로를 제작과정은 무척 까다로워 우리 기술자의 작업환경도 열악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여름의 경우 바람도 통하지 않는 공장 내에서 선풍기조차 켜지 못한 채 작업을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새 단장을 한 원자로는 10여분 모습을 드러낸 뒤 다시 공장으로 들어갔다.


17일 7시경 두산중공업 게스트하우스 앞마당에 서니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쯤에서 두산중공업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두산중공업의 발자취를 찾다보면 50년 전인 1962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양행(現 두산중공업)은 비록 무역기업으로 출발했으나 금속제품 제조업으로 업무영역을 확대했고 이후 기계공업분야로 영역을 꾸준히 확장시킨 결과 1976년 11월 창원종합기계공장을 건설하는 초석을 마련했다. 이후 창원공장은 발전설비와 제철제강설비, 석유화학설비, 건절중장비 등을 생산하는 대규모 중공업 기지로 발돋움했다.

1980년 전후로 현대양행은 힘겨운 시절을 겪었다. 그 동안의 무리한 투자 등으로 경영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당시 정국은 소용돌이를 쳤고, 세계경제는 불황으로 진입했다. 창원공장은 우리 경제의 든든한 축으로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됐으며,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현대양행은 공기업으로 전환됐다. 그리고 한국중공업이란 문패를 달았다.

한국중공업은 해외 프로젝트 수주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 수주금액이 쌓이고, 매출을 크게 신장시킬 수 있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경영정상화가 되면서 기술개발에도 박차를 가했고, 발전과 담수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한전 물량에 전적으로 기대했던 사업구조에도 변화가 찾아왔고, 독자생존의 길을 모색할 힘을 쌓았다. 또 원자력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내면서 핵심기자재를 제작하는 전문기업으로 분명한 입지를 굳혔다.

이도 잠시, 1997년 갑작스런 IMF 외환위기 도래와 함께 한국중공업은 민영화의 길을 걷게 된다. 결국 한국중공업은 두산그룹으로 인수돼 현재 사명인 두산중공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날 8시경 다시 찾은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전날 본 원자로는 사람걸음으로 원자력공장에서 사내부두로 옮겨지게 된다고 한다. 이곳은 출고를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

우리 일행은 이 시간을 틈타 주·단조공장과 원자력공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주·단조공장에 들어서자 큰 용광로와 1만3000톤급 프레스가 눈에 들어왔다. 비록 주조공정은 보지 못했으나 운이 좋게도 단조공정을 볼 수 있었다. 벌겋게 달아 오는 쇳덩어리를 다루는 모습이 대장간의 대장장이처럼 보였고, 그 규모는 거대했다. 50미터는 족히 떨어져 있었음에도 화염이 직접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일반 중공업에서 다룰 수 없는 특수한 설비가 많기 때문에 단조작업도 그만큼 중요하다”면서 “창원공장 한 곳에서 쇳물을 녹여 틀을 만들고 이를 단단하게 하는 단조공정을 거쳐 각각의 공장으로 옮겨져 최종 제품이 만들어 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현재 이곳에서 이뤄지는 모든 공정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서 “1만3000톤급 프레스가 최대 용량임에도 불구하고 이도 모자라 최근 1만7000톤급으로 증설키로 결정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우리 일행의 발길은 원자력공장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원전에 공급될 원자로·증기발생기 등 핵심설비들이 제작되고 있었다. 여느 공장과 달리 깨끗하고 무엇인가 정교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운영되는 23기의 원전핵심설비가 이곳에서 출하됐다고 한다.

10시경 원자로가 사내부두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원자로가 바지선에 선적되면 한국수력원자력(주) 신한울원전에 최종 인계된다.

두산중공업과 한국수력원자력(주) 신한울원전의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전진과 정지를 반복하며 원자로가 점점 선적되기 시작했다. 보내는 마음과 받아들이는 마음이 이들의 얼굴에 아쉬움과 기쁨이 묻어났다.

그리고 1시간 정도가 지난 후 원자로는 바지선에 최종 안착됐다. 이 바지선은 하루 반나절 정도를 운행한 후 경북 울진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취재는 마지막으로 울진에서 이 원자로와의 만남을 기약하면 취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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