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사장 명함이 주는 의미
-김진철 기자-
한수원 사장 명함이 주는 의미
-김진철 기자-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13.11.0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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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활에 없어선 안 될 생필품들이 어떻게 발명됐는지를 살펴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파리채의 구멍이 왜 뚫려 있을까. 공기에 민감한 파리가 공기가 꽉 막힌 물건이 가까이 다가오면 눈치를 채지만 구멍이 뚫려 있으면 공기가 통하기 때문에 파리가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파리채다. 우리나라에 파리채 없는 집이 있을까. 작은 관찰이 만들어낸 신선한 변화다.

최근 취임한 조석 한수원 사장과 우연찮은 기회에 명함을 교환했다. 뜻하지 않게 명함에 핸드폰 번호가 기재돼 있어 놀라웠다.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장이나 공기업 사장 등의 명함에는 회사전화번호만 기재돼 있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명함제작 당시 비서실에서 물어보지 않았을까. 어찌됐든 자의든 타의든 간에 조 사장의 명함은 한수원 내 신선한 변화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왜 신선한 변화인지 살펴보자. 사실 최근 빗어진 원전비리사태는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일부 몰지각한 임직원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두려울 것이 없으니 과감해지고,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니 잘못된 관행이 지속된 셈이다. 넌 몰라도 돼, 내가 알아서 하면 된다는 식의 조직문화가 한수원을 피폐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노영민 의원(민주당)은 면장갑 납품하고 싶다고 문의하자 본사에 문의해봐라, 사업소에 문의해봐라, 그것도 모자라 보안차원에서 가르쳐 줄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면서 호되게 질타했다. 함부로 넘봐선 안 될 곳임을 스스로 선을 그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건 취재 경험담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명함이 오고가는 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취재차 한수원 관계자와 만나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건넸으나 명함은 고사하고 자리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홍보실로 쫓겨난 적이 몇 번 있었다. 한수원에서만 겪은 일이다. 물론 명함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사무실이었으니 그럴 일은 절대 없고,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었으니 당연히 우연도 아니지 싶다. 물론 대부분의 임직원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조 사장의 명함이 한수원 조직문화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고 생각된다.

조 사장은 공직에 몸담을 당시 18년 숙원사업이었던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문제를 해결한 일등공신 중 한 사람이다. 낮은 자세로 지역주민과 만나고 합리적으로 일을 추진한 결과다. 부디 한수원 직원들이 조 사장의 낮은 자세를 배웠으면 한다.

특히 지금의 원전비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원전비리에 연루된 임직원을 색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건전한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한수원 임직원도 인간이다 보니 실수로 원전을 불가피하게 세울 수 있다. 그래서 법적으로 예산을 낭비하면서까지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만들어 준 것이다. 다만 비리는 다른 문제다. 실수로 금전을 요구하고 받았다,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원전비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선 조직원 스스로가 그릇된 일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건전한 조직문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초등학생 수준의 상식에서만 생각해도 답은 똑 같다. 또 이에 앞서 부끄러움을 알기 위해선 스스로를 낮추는 법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눈을 의식해야 된다는 뜻이다.

그런 측면에서 조 사장의 명함은 인위적인 눈이 아닌가 싶다. 한수원 내부에 뿌리박힌 내부의 부조리함을 찾아내고, 불합리한 상하관계로 고통 받는 직원들을 구제하는 그런 눈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이를 발판으로 한수원이 보다 더 건강해지질 수 있는 작은 발견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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