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영어> 연가시(3)
<스크린영어> 연가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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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2.09.0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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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영어’는 일반적인 영화 감상평이 아닌 우리 사회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상황을 연관시킨 필자의 생각이 표현되며, 영화속의 명장면과 명대사를 통한 교훈도 소개하고 있다. 필자(신병철)는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 근무 중이며, 사단법인 에코맘코리아에서 정책위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지난 수년간 세계 각국의 탄소배출권과 관련한 비지니스를 직접 수행해온 인물이다.

필자는 공군출신이다. 항공관제특기를 받아 오산의 전술항공통제본부에서 복무하다보니 각종 비행사고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이 있다. 다음은 그 중 하나이다. 어느 여름 날 전남 여수 근처의 한 자그만 섬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였다. 폐병환자였는데 그간 주로 섬 내 보건소에서 치료를 받아 왔는데 그날 갑자기 상태가 위독해지며 생명의 촌각을 다투게 된 것이었다.

장마철이었던지라 태풍도 불고 비도 많이 오는 등 기상여건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결국 응급헬기가 떠야하지만 선뜻 나서는 조종사가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섬에서는 다급한 구조요청이 끊이지 않고 도달했다. 결국 군이 나서는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준위계급의 헬기조종사 한명이 자원하고 나섰다. 급히 의사와 간호사로 응급구조팀을 조성, 이륙하였다.

응급환자가 발생한 섬에서는 섬 가운데에 커다란 불을 피워놓고는 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헬기의 안전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것 이었다. 관제사는 섬과 조종사의 중간에서 조율을 하느라고 무척 바빴다. 최종적으로 불을 피워놓은 것을 발견했고 바로 착륙하겠다는 조종사의 말을 들은 후 관제사는 그와의 교신을 끊었다.

레이더상의 헬기 항적도 섬 바로 인근상공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한 십여분이 지나자 섬에서 왜 헬기가 착륙하지 않느냐는 전화가 왔다. 깜짝 놀란 관제사가 서둘러 헬기와의 교신을 시도했지만 더 이상 연락이 닿질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헬기는 섬 근처까지 거의 접근했다가 갑자기 불어온 돌풍을 이기지 못하고 추락해 버린 것이다.

헬기조종사 미망인의 말을 필자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날 호출을 받고 남편이 현관문을 나서는데 안색이 너무나 창백한 게 마치 저 세상 사람처럼 느껴졌었다고 한다. 가지 말라고 말렸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너무나 후회가 된다면서 그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아마 현관문을 나설 때 이미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었나 보다. 한 사람의 폐병환자로 인해 꽃다운 목숨 셋이 그날 밤 그렇게 운명을 달리했던 것이다.

또 다른 항공사고 이야기. 사관학교를 막 졸업하고 훈련비행을 하던 소위한명이 추락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비상탈출을 했고 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구조팀이 급파되어 현장에 도달했지만 수미터를 훌쩍 넘는 성난 파도로 인해 아직까지 살아서 구원을 요청하는 조종사를 빤히 바라보면서도 구해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헬기에서 밧줄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밧줄의 끝을 조종사의 몸에 연결한 후 조심스럽게 끌어 올리는데 때마침 거센 돌풍이 몰아치며 조종사의 등위에 달려있던 낙하산을 활짝 펼쳐 버렸다. 세찬 바닷바람이 펴진 낙하산을 더욱 부풀어 올리며 이리 저리 흔들어대자 헬기까지 요동하며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결국 밧줄을 자를 수밖에 없었고 살아 있던 조종사는 그렇게 다시 세찬 파도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 후 젊은 조종사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시신도 없는 장례를 치루었다.

그로부터 약 한달 뒤 공군 상황실로 한 어부가 전화를 걸어왔다.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내렸는데 거기에 사체가 같이 딸려왔다는 것이다. 군에서 이름표와 군복을 확인해 보니 한 달 전 사고사한 조종사였다. 안타깝게도 그의 내장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물고기들에게 희생되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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