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최종방어선 붕괴…꼬리를 무는 은폐의혹
고리원전 최종방어선 붕괴…꼬리를 무는 은폐의혹
  • 김진철 기자
  • kjc@energytimes.kr
  • 승인 2012.03.16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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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디젤발전기, 12분간 전원 상실에도 재역할하지 못하고 ‘무용지물’
늑장보고도 모자라 원전간부 대책회의 연 사실 드러나면서 ‘일파만파’

[에너지타임즈 김진철 기자] 영원히 묻혀버릴 것 같았던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가 세상에 드러났다.

고리원전 1호기에 대한 전력계통과 보고체계 등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계획예방정비기간 중이던 고리원전 1호기에 전원이 상실됐으나 최후 방어선인 비상디젤발전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고리원전 공용으로 비치한 수동 대체비상디젤발전기도 가동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허술한 보고체계도 도마에 올랐다. 또 은폐를 위한 대책회의까지 연 사실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더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한 심각한 직무유기로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퍼져 나오는 이유다.


총체적 대책에도 불구하고
고리원전 최종방어선 뚫려

지난 2월 9일 20시 34분경 계획예방정비 중이던 고리원전 1호기의 발전기 보호계전기 시험과정에서 오작동으로 12분간 발전소의 전원이 차단됐다.

이 보호계전기는 과도한 전압이 들어오거나 쇼트가 발생하는 등 비상사태에 대비 전력차단기를 가동시켜 자동으로 전력이 끊어지도록 만드는 시스템이다. 고리원전의 외부전원차단기와 연결된 보호계전기는 3개 중 2개가 작동되면 전력이 차단되도록 구성돼 있다.

당시 작업자가 첫 번째 보호계전기를 시험한 뒤 실수로 스위치를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두 번째 보호계전기를 시험하기 위해 스위치를 켜 두 개가 모두 작동되면서 전원이 상실됐다.

문제는 전원이 상실됐음에도 불구하고 비상디젤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은 것. 당시 계획예방정비기간이라 원자로 가동은 중단된 상태였지만 점검 중이던 비상디젤발전기 1대 이외에 나머지 1대는 작동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동되지 않았다.

이 비상디젤발전기는 이물질 혼입 등으로 인해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원인에 대한 파악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비상디젤발전기가 작동되지 않을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고리원전 공용으로 비치한 수동 대체비상디젤발전기도 이번에 가동되지 않았다.

사실상 최후의 방어선마저 무너진 형국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전원차단부터 수소폭발까지 이뤄진 것임을 감안할 때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영환 의원(민주통합당)은 지난 14일 고리원전 1호기에 12분간 외부전원공급이 중단된 사건이 발생한데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냉각기능이 회복되지 않았다면 원자로의 노심이 녹는 노심용융상태가 발생했을 것”이라면서 “돌이킬 수 없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을 수 있는 사고”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원전이 중단된 상태지만 원자로 열기를 계속 냉각시켜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형사고의 일촉즉발에 다다른 충격적인 일”이라고 덧붙였다.


보고체계 모든 측면서 구멍
원자력안전委 뒤늦은 대응

사건의 전말은 우연한 기회에 내용을 접한 한 시의원에 의해 세상에 공개됐다.

김수근 부산시의회 의원(새누리당)은 지난 2월 20일경 부산시 기장군 소재의 한 음식점에서 지인들과 저녁식사 도중 옆 좌석에 있던 사람들의 오가는 대화 속에서 고리원전 1호기 계획예방정비기간 중 정전사고가 발생했고, 2차 전원을 공급하는 비상디젤발전기도 작동하지 않아 큰 문제가 생길 뻔 했다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됐다고 전말을 설명했다.

지난 12일 한수원은 고리원전 1호기에 발생한 전원상실사건을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했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해당 발전소를 정지시키고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히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특히 이 사고발생 직후 원전간부들이 자체 대책회의를 연 것으로 드러나 은폐의혹이 일파만파(一波萬波) 퍼지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정전사고가 발생한 뒤 1시간 지난 후 고리원전 제1발전소장과 기술실장, 발전팀장 등 간부들이 현장에서 대책을 논의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정전사고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한편 당시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파견 나온 감독관이 사고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원전일지도 허위로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리원전 제1발전소장이었던 문병위 한수원 위기관리실장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진행한 조사에서 모든 것은 자신이 지시했으며, 윗선으로부터의 개입은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환 의원(통합민주당)은 “원자력안전의 대들보가 무너져 내리고 위기관리시스템의 방죽이 무너졌다”면서 “한수원이 한 달이 지나서야 보고를 듣고, 장관도 정부도 원자력안전에 대해 먹통이 되는 나라가 이러고도 핵 안보 정상회의를 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그는 “원자력안전기술원장과 원자력안전위원장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한 심각한 직무유기로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면서 “이 사건을 모르는 상황에서 사건 공개 직전에 본부장을 교체한 것도 이상한 우연”이라고 덧붙였다.


힘 실리는 반핵단체 목소리

반핵단체들의 목소리도 한껏 높아졌다.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 은폐의혹과 관련 부산·울산지역 반핵운동 시민단체는 지난 14일 고리원전 앞에서 규탄집회를 갖고 고리원전 1호기 폐쇄를 촉구했다. 울산시 울주군의회도 같은 날 항의 방문해 목소리를 보탰다.

이날 규탄집회에서 이들은 “고리원전 1호기의 중대한 사고를 한 달이 넘어서 보고한 것은 한수원이 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했다는 의혹이 짙다”면서 “고리원전 1호기의 가동중단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제대로 된 보완책 없이 운용기간을 연장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울주군의회 의원도 “이번 사고는 고리원전 1호기의 안전시스템에 심각한 허점이 드러난 것”이라면서 “원전 안전가동에 대한 울주군 군민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만큼 앞으로 원전이 내놓는 안전대책을 어떻게 믿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1주기를 앞두고 원전에 대한 불안이 심각하게 높아진 만큼 안전성에 신뢰를 회복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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