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펜더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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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9.2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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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시절 후임병중에 민 상병이라는 자가 있었다. 신장은 1.75m 정도로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끊임없는 체력단련을 통해 우람한 근육질을 지닌 이었다. 어느 날 그와 함께 속리산에 놀러갔는데 마침 술 취한 동네 건달 몇 명이 시비를 걸면서 병으로 그를 내리쳤다. 재빠른 동작으로 건달의 팔목을 잡아챈 그는 “살고 싶으면 가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팔목을 죄어오는 엄청난 괴력에 놀란 그들은 본능적으로 하나 둘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필자가 근무하던 부대에는 미군들이 많이 있었다. 어느 날 키가 1.87m 정도 되는 평범한 흑인미군 한 명과 대화를 나누던 중 민 상병 이야기가 나왔다. 그가 부쩍 관심을 보이기에 팔씨름 제안을 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였다. 평범한 서양인과 동양인 장사와의 불꽃 튀는 힘 대결, 하지만 이는 개최 직전 민 상병의 급작스런 거부로 인해 성사되지 못하였다. 힘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명분이었지만 패배에 대한 두려움 또한 컸을 것이다.

그 후 필자는 부대근처에 힘 쌘 한국인이 한명 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모 가구점 사장이었는데 배움이 짧았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구를 배달하며 자연스럽게 힘을 길러왔다. 그의 양팔은 균형적으로 발달이 되어 있었고 팽팽한 팔뚝위에 드러난 혈관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이 불끈거리고 있었다. 그의 키는 1.65m. 하지만 평생, 힘이라면 남에게 밀린 적이 없던 위풍당당한 그였다.

필자는 그와 한 평범한 미군과의 팔씨름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우선, 오른 팔. 놀랍게도 그가 무릎을 꿇었다. 왼손은 이겨내어 가까스로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켰다. 그로서는 남는 것이 없는 시합이었다.

실베스타 스탤론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엑스펜더블에는 쟁쟁한 세기의 스타들이 총 동원되었다. 아놀드 스왈제네거, 브루스 윌리스, 제이슨 스태덤, 미키 루크, 돌프 룬드그렌 등 이름만으로도 빛을 발하는 세기의 액션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아시아스타로서는 유일하게 이연걸이 참여하였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다소 초라하다. 돌프 룬드그렌이 분한 괴력의 소유자 거너 젠슨과의 몇 차례 결투에서 매 번 밀리는 모습을 보인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이연걸은 체구가 작다는 이유로 반쪽짜리 인간으로 취급당한다. 동양여성과 결혼하는 서구남성들은 있지만 동양인 남성과 결혼하는 서양여성들의 숫자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그네들의 시각에 체구가 작은 동양남성들은 어떤 이미지일까.

영화 속 이연걸은 “난 몸집이 작아서 더 많이 뛰어야 해”, 사는 게 고달파 몇 장만 더 얹어줘“하며 작은 체구로 거대한 서양인들 사이에서 경쟁하는 것이 벅차다고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돌프 룬드그렌이 분한 거너 젠슨도 이연걸을 향해 “아직도 아동복 입고 다니냐”며 비아냥거린다. 과연 동양인은 모든 면에서 열등하기만 한 것인가.

필자는 유럽업체와 거래협상을 추진한 적이 있다. 협상 중 시세가 내려가자 유럽본사는 손해가 두려워 손을 떼려 했지만 그곳의 한 중국인 간부는 “우리 아시아인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줄 안다”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했다. 이익이란 구하지 않아야 저절로 이롭게 되는 것이요 이익을 구하면 도리어 얻지도 못하고 해를 보게 된다“라는 맹자의 말이 그 심중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키도 작고 왜소한 동양인의 매력은 역설적으로 신비롭기까지 하다.

3kg도 못되는 체중으로 이 땅에 나온 필자의 딸 예솔이가 얼마 전 열 고열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이 엄마는 꼬박 4일 밤을 새며 땀과 눈물로 아이를 간호했다. 필자 또한, 새벽에 응급실도 다녀오고 휴가까지 내서 대형종합병원에 데리고 가 진찰을 받아 보았지만 별반 차도가 없었다.

필자의 집 근처에 있는 한 작은 소아과, 그곳의 김은아원장은 대번에 병의 원인을 짚어내며 단숨에 고쳐주었다.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실력, 이는 환자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헌신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일 게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환자들로 넘쳐나는 그곳은 이익을 구하지 않았지만 저절로 이롭게 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제목 Expendables는 무슨 뜻일까. 혹시 extendable와 혼돈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몰라 구분해보기로 한다. extendable는 ‘늘일 수 있는’, ‘연장할 수 있는’ 의뜻을 지녔고 Expendables는 복수형으로 쓰여 ‘소모품’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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