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또 다른 기회의 땅”
-김종용 주사우디아라비아왕국 대사-
“사우디, 또 다른 기회의 땅”
-김종용 주사우디아라비아왕국 대사-
  • 에너지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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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6.0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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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대 처음 아랍어와 문화를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풀 한포기 없는 사막으로 뒤덮인 기회의 땅이 있는데 그곳의 건설 현장에서 몇 년 땀 흘리고 고생하고 나면 007 가방에 비싼 외제 카메라와 선물들을 가득 담고 금의환향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나라는 물 값보다 기름 값이 훨씬 싸다고 하니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유수 기업인들과 함께 사우디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우리나라의 우수한 제품과 기술력을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다니게 될 줄은 몰랐다. 상점 맨 구석에 먼지만 쓰고 있던 국산 제품들이 이제는 어딜 가나 상점의 맨 앞에 진열되어 있고, 재고가 없어서 못 판다는 원성 아닌 원성을 듣게 될 줄도 몰랐다. 그저 부지런하고 묵묵하게 땀 흘리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들이 세계 최첨단 기술력으로 발전하여, 이제는 제발 자기들에게도 우리의 기술을 전수해 달라는 부탁이 쇄도하게 될 줄도 몰랐다. 지난 한해에만 한국 기업 건설 수주 총액이 100억 불을 달성하게 될지도, 금년 1사분기에만 벌써 100억 불을 육박하게 될 줄도 몰랐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이곳은 여전히 기름이 물보다 싸다. 믿기지 않겠지만 국산 대형 승용차에 기름을 가득 넣고도 채 만원을 내지 않는다. 이러니 한국에서 기름 값이 10원 오르고 내리는데 경제가 출렁인다는 기사를 보니 선뜻 와 닿지 않는다. 물론 사우디 정부가 제값 받고 기름을 공급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중동 정세로 원유 공급이 부족하여 유가가 상승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이곳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우디만 하더라도 여전히 하루 350만 배럴의 추가 생산 여력이 있으니 충분한 공급 잉여량이 있다. 리비아 사태로 질 좋은 리비아산 원유 공급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사우디 남부 유전에서 생산되는 똑같은 종류의 원유로 부족량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최근 유가 상승은 공급 부족의 문제라기 보다는 국제 투기자본 세력과 향후 공급 부족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는 에너지 소비 주체들의 심리적인 요인에 기인한다는 게 에너지 전문가들의 말이다.

선진국 정부와 온건 산유국들은 어떻게든 유가 상승을 부추기는 투기 세력들과 일반인들의 우려를 잠재우려 노력하고 있다. 당연히 유가가 올라가면 사우디로서는 이익이 증가되니 좋기도 하겠지만, 과거 80년 대 중반 유가 폭락의 경험을 겪은바 있는 사우디는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국제 에너지 리더로서 배럴당 75-85불 사이를 유지하는 것이 세계 경제의 건전성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적정하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중동 사태가 발발하자마자 가장 먼저 자발적으로 증산을 선언한 것이 사우디다.

여하간, 이 땅에는 유가 상승으로 자금이 물밀듯이 쏟아지면서 신규 프로젝트들과 투자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지난해 4000억 달러 규모의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국내 인프라 확충과 인적자원 개발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발표하여 이미 이행을 시작하였다. 금년 3월에는 국왕이 국내 복지를 위해 향후 1300억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주택 건설, 일자리 창출, 신규 병원 건립과 서비스 확충에 사용하겠다고 선포하였다.

사우디는 아직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사우디는 경제 개발과 인구 급증으로 현재 43 기가와트 수준의 전력 수요량이 2020년에는 71 기가와트로, 2030년에는 120 기가와트로 세배까지 폭증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우디 정부는 태양 에너지와 원자력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국제 전문가들과 투자자들이 사우디에 몰려들고 있다.

우리도 유가가 오른다고 위축되어 있을 때가 아니다. 과거 70년 대 오일 위기를 겪을 때 우리 기업들이 맨 주먹으로 성실함만을 무기삼아 진출해서 피와 땀으로 국내 산업과 경제 발전의 기반을 일궈낸 곳이 바로 이 땅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유가 상승으로 일련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이 위기를 우리 기업들이 이 땅에 다시 진출하여 선진국에 비해 다소 뒤쳐져 있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획기적으로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제2의 기회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일천하나마, 아랍어와 아랍문화, 역사를 공부한 범부로서 이 중차대한 시점에 한국의 대사로서 근무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영광스로우면서도 어깨가 무겁기도 하다. 오늘도 대사관 동료들과 우리 기업들의 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고 다시 한번 새롭게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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